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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인가? 위대한 실패작인가?
김도훈 2012-06-19

올여름 최고의 논쟁작 <프로메테우스> 전격 해부

우주적 찬반양론이다. 리들리 스콧이 SF 장르로 30여년 만에 복귀한 블록버스터 <프로메테우스>가 마침내 에어록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것은 <에이리언>의 프리퀄인가? 리부트인가? 아니면 평행우주 속의 속편인가? 수많은 가설들이 여전히 오가는 가운데 비평적 찬반도 격렬하다. 이건 걸작인가? 아니면 위대한 실패작인가? 올여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프로메테우스>를 여러 가지 각도로 읽었다.

하이프(Hype)는 위험하다. 과대광고나 선전, 지나치게 치솟은 기대감을 의미하는 하이프는 종종 영화에 독으로 작용한다. 특히 하이프는 엄청난 수의 팬을 거느린 원작 소설의 영화화 프로젝트나 오랜만에 돌아온 속편, 혹은 거장의 야심만만한 신작에 독하게 들러붙어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단물을 쪽쪽 빼먹곤 한다.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는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하기 전부터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하이프를 등에 업고 있었다. 어쩔 도리 없는 일이다. 이건 전설적인 <에이리언> 시리즈의 속편 혹은 프리퀄이며, 리들리 스콧의 30년 만의 SF 장르로의 귀환이다. 갓 공개된 <프로메테우스>가 격렬한 찬반양론에 휩싸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운명이다. 애초부터 <에이리언> 시리즈의 팬과 편집증적이기로 유명한 SF 장르팬들의 하이프를 아틀라스 산처럼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프로젝트였으니까 말이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프리퀄인가?

그렇다면 먼저 몇 가지 질문부터 던져보자. 이건 <에이리언> 시리즈의 프리퀄인가? 맞다. 프리퀄이 틀림없다.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에 등장했던 스페이스 자키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태생적으로 <에이리언>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다만 몇 가지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에이리언> 1, 2편의 무대가 된 위성 이름이 LV-426였던 데 반해 <프로메테우스>의 무대는 LV-223이다. 어쩌면 <프로메테우스>는 J. J. 에이브럼스가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서 벌였던 시간의 서커스를 재현하는 프리퀄일 수도 있다. 평행우주 속의 또 다른 <에이리언> 시리즈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72쪽을 참조하는 게 좋다).

<프로메테우스>는 어마어마한 무게감의 프롤로그와 함께 시작된다. 지구로 온 인간형 외계인이 자신의 DNA를 물속에 풀고, 그것으로부터 생명체의 본격적인 진화가 시작됐던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난다. 리들리 스콧은 시작부터 인류의 창조주가 외계인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기 2085년. 고고학자인 엘리자베스 쇼(노미 라파스)는 고대인이 남긴 벽화들이 인류를 창조한 외계인의 초대장이라고 확신하고, 어쩐 일인지 엘리자베스의 가설을 믿는 웨일랜드사는 우주 탐사선 프로메테우스호를 제타 2 리티쿨리 태양계의 위성인 LV-223으로 날려보낸다. 그곳에서 일행은 그들이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창조주 외계인들의 유적과 시체를 발견한다. 그러나 창조주는 결코 위대한 존재들이 아니었고, 오히려 생체병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무자비한 전쟁광들이다.

오랜 SF 장르팬이 아니라면 에리히 폰 데니켄 스타일의 외계인 초고대문명설을 끌어온 <프로메테우스>의 기본 개념이 허술한 괴담이나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가설은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부터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투 마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SF소설과 영화의 영감의 원천으로 사용되어왔다. 내외신의 많은 평들은 종종 <프로메테우스>가 큐브릭의 위대한 비전을 허술하게 끌어왔다고 웃어넘긴다. 다시 말하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장르 속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어온 굳건한 관습 중 하나이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비전 역시 큐브릭의 것이 아니라 원작자이자 위대한 SF 작가인 아서 C. 클라크의 것이었다. 초고대문명설 자체를 <프로메테우스>의 결정적인 흠으로 트집잡는 건 이 장르의 오래고 위대한 유산 자체를 통째로 농담으로 취급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다.

리들리 스콧의 지나친 야심인가?

오히려 가장 큰 문제는 리들리 스콧이 지나치게 많은 걸 한번에 해내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그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DNA를 지켜내면서도 단독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하며, 안드로이드 로봇 데이빗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블레이드 러너>의 DNA까지 이식하려 노력한다. 게다가 그는 앞으로 계속될지도 모르는 에픽 시리즈를 열어젖히려는 야심까지 꺼내 보인다. 리들리 스콧은 마치 유작을 만들 듯이 <프로메테우스>에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 이 모든 걸 다 하려면 당연히 이야기에 치즈 구멍 같은 허점들이 마구 생겨날 수밖에 없다. <프로메테우스>는 영화 속에서 던져지는 질문들에 온전히 대답을 내놓지는 못하는 영화다.

그런데 혹시 리들리 스콧은 온전한 답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대신 스콧은 <프로메테우스>를 거의 비약적일 정도로 감각적인 경험으로 설계하고 주조했다. 우리는 기술적인 성취가 이야기의 함정까지 껴안아버리는 드문 영화들을 종종 목도하곤 하는데 <프로메테우스>가 그런 영화다. 50~60년대 고전 SF영화의 복고적인 미려함과 H. R. 기거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흠결없는 CG로 감싸안은 프로덕션 디자인은 거의 완벽하고, 3D 효과는 <아바타> <휴고>와 함께 역사상 가장 황홀하게 주조됐다. 리들리 스콧은 지금 할리우드가 해낼 수 있는 모든 기술적 경이를 모조리 쏟아부은 다음,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이 오감을 모두 열어젖히고 <프로메테우스>의 모험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이건 다시 말하자면 기술적 예술품이거나 예술적 기술품이다.

기술적 예술품이거나 예술적 기술품?

동시에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놀라울 정도로 고전적인 장르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 장르적인 경이감으로 가슴을 벅차게 만들던 고전 SF영화들을 재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외계 우주선 속에서 벌어지는 몇몇 시퀀스들은 무시무시한 고딕 호러의 분위기를 품고 있는데, H. P. 러브크래프트의 팬들이라면 즉각적으로 <광기의 산맥>을 떠올릴 게 틀림없다. 사실 여러 면에서 <프로메테우스>는 <광기의 산맥>의 간접적인 영화화라고 볼 수 있다. 탐사대원들이 인류가 등장하기 수억년 전에 문명을 이루었던 지적 생명체의 흔적과 마주친 뒤 그들이 창조한 무시무시한 괴물에 쫓긴다는 내용도 그렇거니와,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오만이 좌절당하면서 솟아나는 근원적 공포를 그려내는 방식도 비슷하다. <광기의 산맥>의 영화화를 추진하던 기예르모 델 토로가 <프로메테우스>의 영상을 본 뒤 “같은 내용이고 배경도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결정적으로 <광기의 산맥>에 사망선고를 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털어놓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사실 리들리 스콧의 첫 번째 <에이리언> 역시 H. P. 러브크래프트로부터 막대한 영향력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였다. 어쩌면 스콧은 너무 멀리 나아가버린 <에이리언> 시리즈를 태초의 시작점으로 되돌린 건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감정은 두려움이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두려움은 바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러브크래프트의 유명한 문구는 <에이리언>에 이어 <프로메테우스>로 이글거리는 생명을 얻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의 프리퀄이지만 프리퀄이 아니다. 이것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좇는 새로운 우주적 모험에 얼른 탑승하라고 재촉하는 거장의 마지막 제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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