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들이 있다. 길을 걷다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무심코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있다. 집을 나서기 전에 들었던 노래이거나 누군가의 휴대전화 벨소리로 들려왔던 노래를 따라 부를 때가 많지만 가끔은 아무런 이유없이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다. 갑자기 내가 이 노래를 왜 부르고 있지? 싶은, 어쩜 이렇게 정확하게 가사를 기억하고 있지? 싶은, 노래들. 고찬용의 새 앨범(이자 두 번째 솔로 앨범인) <<Look Back>>이 발매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내 입은 자동 반사적으로 <거리 풍경>을 흥얼거리고 있다.
대학을 휴학하고 이리저리 놀러다니던 시절, 얼마나 이 노래를 흥얼거렸는지 모른다. ‘회색빛 구름에 싸인 푸른 하늘, 그 속엔 초록색 나무가 보이고 새소리 아름답지요. 하나둘 별이 내리네 눈부시게, 그 속엔 사람들 웃음도 보이고 거리는 밤을 만나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가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대학로나 광화문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거리 풍경>을 부를 때면 늘 어깨를 들썩이거나 (마치 모이를 주워 먹으러 다니는 비둘기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거렸던 것도 기억난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고찬용의 노래들은 롤러코스터와 같아서 몸을 가만히 둔 채 따라 부를 수가 없다. 급강하하고 급선회하고 급상승하는 멜로디를 따라가려면 몸이 같이 움직여야 하고, 그러다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경쾌해진다.
<거리 풍경>도 그랬고, 2006년에 발매한 첫 번째 앨범도 그랬고,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지만 고찬용의 노래는 한번 듣고 나면 기억나는 멜로디가 전혀 없다. (재즈에 바탕을 둔 음악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노래가 밍밍한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한번만 들어도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요즘 노래들에 비해 경쟁력이 없는 셈이다. 두 번째 들어도 처음 듣는 노래 같다. 아, 이런 멜로디였었나, 싶다. ‘어떤 노래야? 한번 불러봐’라고 누가 얘기해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세 번째 들으면 아, 이런 노래였지, 하면서도 전혀 다른 노래 같다.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나면 멜로디가 조금씩 선명해지는데, 한번 선명해진 멜로디는 쉽게 잊혀지질 않는다.
고찬용의 노래를 떠올리면 늘 나비가 생각났다.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가끔 어디에 내려앉는 듯하다가 다시 허공으로 팔랑거리며 솟아오르고, 궤도를 알 수 없이 사방으로 급회전하는 나비 같은 노래들이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무지개 나비>를 듣고는 다시 한번 고찬용의 멜로디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아, 중력의 지배 따위 무시하고 하늘로만 날아다니는 노래가 가능하구나. 나비를 노래하는 게 아니고, 노래 자체가 나비가 되는 게 가능하구나. 나비의 동선을 따라다니는 마음으로 요즘 나는 <무지개 나비>를 흥얼거리고 있다. 멜로디가 너무 복잡해서 따라 부르기는 힘들지만 그저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