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에 열린 영화산업노조와 제작가협회의 단체교섭 현장.
지난해부터 진행된 영화계의 단체협상과 임금협상(이하 임단협)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2007년 영화산업 최초의 임단협이 체결된 이래 5년 만에 이루어지는 전면적인 개편이다. 공교롭게도 첫 임단협은 한국영화 최악의 불황기와 맞물리는 바람에 2008년의 두 번째 임금협상을 제외하고는 노사 양쪽의 양해하에 기존 내용을 동결하는 방식으로 임단협을 적용해왔다.
이번 임단협의 주요 개편사항 중 눈에 띄는 점은 최저임금의 인상과 초과근로시간 기준 변경, 그리고 4대 보험(국민연금, 건강, 고용, 산재보험)의 전면적인 적용이다. 최저임금은 종전에 4개 직급별로 구분해놓은 것에서 한시적으로 직급 구분을 없애는 방향으로 합의가 됐다. 이 경우 전체 예산에서 인건비를 신축성있게 책정할 수 있다. 시행 결과에 따라 다시 직급별로 규정할 것인지, 최저임금안만 남겨놓을 것인지 결정할 것이다. 초과근로시간 기준은 12시간으로 정해졌다. 노동법상 1일 근로시간은 8시간이다. 영화는 예외조항에 해당돼 1일 15시간까지 가능하지만, 1주일 동안 60시간 이상을 넘겨서는 안된다. 이전 규정에서는 기준시간이 12시간부터 15시간까지 모호한 범위에서 정해져 있었다. 4대 보험의 경우에는 사실 임단협 조항에서 변한 게 없다. 하지만 영화 스탭을 보험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논란과 보험료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는 임금 실수령액에 대한 영화계 내부의 현실적인 어려움 등 여러 요인이 맞물린 사안이었다. 때문에 조항에 명시된 내용이 무색하게 현장에 대한 보험적용률은 생각보다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임단협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계약금-잔금’ 체계의 도급식 보수구조와 추가적으로 떠안게 될 사쪽의 납부보험료에 대한 부담도 이런 소극적인 대응에 한몫했다. 지난해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의 표준근로계약서에도 이와 관련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지만 권고사항이라는 한계로 인해 실제로 적용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계가 4대 보험의 전면적인 적용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는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고군분투하는 스탭들에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줌으로써 처우개선과 상생의 길을 마련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현재 시행 중인 교육훈련 인센티브 사업과도 맞물려 생계곤란으로 인한 전문인력의 유출을 막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영화산업의 질적인 향상효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영화산업의 부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한국영화산업은 유독 그 어느 곳, 어느 때보다도 다이내믹하고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안고 가야 하는 스탭들의 불안도 주요 원인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새로운 임단협 체결과 4대 보험의 적용은 한국영화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번 임단협에서 4대 보험의 전면적인 적용은 투자사의 동의를 얻은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관계자들은 여전히 현장이 걱정된다고 말한다. 임단협에 참여한 한 교섭위원은 시범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4대 보험을 적용해보려 했다. 스탭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약 80%의 스탭들이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전에는 내지 않았던 돈이 임금에서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최현용 사무국장은 “스탭들의 인식이 바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6개월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한달 이상의 실업급여가 나오는 건 동일하다. 실직 중인 스탭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훈련 인센티브 사업 또한 이전 현장에서 4대 보험에 가입한 스탭들을 대상으로 한다. 올해 11월부터 시행될 예술인 복지법이 적용되는 사례 또한 4대 보험 가입 유무가 조건이 될 전망이다. 그처럼 영화현장의 4대 보험은 그냥 4대 보험이 아니라 영화 스탭들을 위한 여러 복지체계 시스템과 맞물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