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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dget] 만나면 비싼 친구

M9-P 에르메스 에디션

사양 기본 사양은 기존의 라이카 M9-P와 동일하다. 1800만 화소, ISO감도 2500, 최대 셔터 스피드는 4천분의 1초, 무게 약 600g.

특징 라이카만 해도 고가인데 여기에 에르메스까지 가세했다. 점심 사겠다고 브래드 피트를 불렀더니 안젤리나 졸리가 따라 나온 듯한 상황. 보기는 더 좋은데 그만큼 부담도 커졌다.

패션 브랜드가 옷이나 가방, 구두만 만드는 건 아니다. 잘 알다시피 프라다와 아르마니는 각각 LG, 삼성과 함께 스마트폰을 선보였으며 구치는 피아트500의 한정판 디자인에 참여했다. 올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방문했다면 마르니의 의자, 보테가베네타의 책장,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슈트 걸이를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르메스 역시 새로운 협업에는 꽤 적극적이다. 물론 럭셔리의 대명사 대접을 받는 패션 하우스인 만큼 손을 내밀 상대는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그러니까 카메라로 치자면 라이카 정도는 돼야 파리 생토노레 거리의 아틀리에에 초대되어 함께 홍차라도 홀짝일 수가 있다. 라이카와 에르메스가 2003년,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티타임을 가졌다. 정식 출시가 임박한 라이카 M9-P 에르메스 에디션은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카메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친분이 두터운 두 브랜드는 당장의 유행보다 오랜 전통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펜타프리즘과 반사미러를 제거해 부피를 줄인 미러리스(mirrorless) 카메라인 M9-P는 태생부터 필름카메라의 외양을 지닌 디지털카메라였다. 그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게 바로 에르메스 에디션이 아닐까 싶다. 현재 폴크스바겐 그룹의 총괄 디자이너를 맡고 있는 월터 드 실바가 손을 본 보디는 과시적인 장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매끈하다. 기존의 M9-P도 결코 요란한 생김이 아니었지만 이번 제품은 그보다도 더 디테일을 자제했다. 큼지막한 알파벳 H를 전면에 얹지도 않았고, 기기 상단의 라이카 로고까지 지워버렸는데도 여전히 에르메스 같고 라이카 같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에르메스는 금장 로고를 박는 대신 카메라를 최상급의 황갈색 송아지 가죽으로 감쌌으며 스트랩도 같은 소재로 제작했다. 버킨 백을 만드는 데 쓰이는 바로 그 가죽이다. 또한 은으로 마감한 라이카 렌즈가 액세서리로 제공될 예정. 일본 TV쇼에 출연해 에르메스 백을 잘근잘근 밟았던 제인 버킨도 이 카메라 앞에서는 조심스러워할 것 같다.

라이카와 에르메스의 만남을 축복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역시 가격이다. 본체와 스트랩, 그리고 라이카 Summilux-M 50mm f/1.4 ASPH. 렌즈로 구성된 패키지(300대 한정 판매)가 2만5천달러, 즉 2900만원 선이니까. 하지만 기함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한달 늦게 7월에 출시될 라이카 M9-P 에르메스 에디션-장 루이 뒤마 패키지는 무려 5만달러(약 5800만원)라서 이걸 타고 출퇴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작고한 에르메스 회장의 이름을 딴 이 패키지는 본체와 스트랩, 세개의 렌즈(Summicron-M 28mm f/2 ASPH., Noctilux-M 50mm f/0.95 ASPH., APO-Summicron-M 90mm f/2 ASPH.), 장 루이 뒤마가 직접 촬영한 사진집, 에르메스가 제작한 전용 카메라 가방으로 이루어졌다. 딱 100대만 한정 판매한다는데 100대건 1천대건 내가 사서 볼풍선 셀카나 찍을 물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왜 사지도 못할 제품 사진을 바라보면서 군침을 한 대접이나 흘리고 있는 거냐고? 스칼렛 요한슨과 사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벤져스>를 다섯번쯤 관람하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