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7월29일까지 장소: 컬처스페이스 엔유 문의: 1588-0688
뮤지컬 <풍월주>는 신라시대에 ‘풍월’이라 불리는 남자 기생이 있었다, 는 발칙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하나 무늬만 신라시대가 배경일 뿐, 시간을 알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가상의 세계가 무대다. 남자 기생들이 신분 높은 여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곳, 운루. 그곳의 제일 가는 풍월 ‘열’과 그와 각별한 관계인 ‘사담’, 열에게 맹목적인 사랑과 폭력에 가까운 구애를 하는 여왕 ‘진성’이 주인공이다. 이렇듯 뮤지컬 <풍월주>의 뼈대는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안식을 찾고, 사랑 때문에 헛된 욕심을 부리고,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 버린다. 모든 것이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풍월주>는 그 복잡한 사랑을 철저하게 감성에 호소한다. 배우들이 사랑을 말뿐만 아니라 몸짓과 감정으로 구현할 때 관객은 흔들린다. 물론 여기엔 소극장이 주는 감성의 밀도와 휑한 공간이 쓸쓸함을 더하는 4층 무대도 한몫한다. 그러나 성두섭과 김재범, 두 배우를 만나는 기쁨은 대단하다. 성두섭은 안정된 호흡, 건실한 말투와 몸짓으로 열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인물로 구축해냈다. 사담 역의 김재범은 눈빛부터 처연하다. 극한 사랑에 쉽게 부서질 듯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위하는 사담의 마음을 김재범은 애달픈 눈빛과 표정에 가득 담아냈다. 손끝 하나에도 슬픔의 감정이 실린다.
공연 초반 관심이 집중됐던 동성애에 대한 직접적인 행위나 대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지독히 챙겨주는 두 사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잔인한 사랑을 품은 여왕이 있다. 최하위 계층인 풍월의 품안에서 위안을 받으며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는 진성여왕의 모습은 나약한 한 사람을 보여준다. 어쩌면 뮤지컬 <풍월주>는 ‘절대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결국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다음엔 뮤지컬 <풍월주>를 중극장에서 보고 싶다. 풍월의 수를 늘리고 하모니와 군무를 살린 앙상블을 곁들이면 규모감있는 무대도 가능할 듯하다. 여기에 사담과 열, 진성여왕의 내러티브를 좀더 탄탄하게 구축한다면, 이번에 놓친 ‘슬픔과 눈물의 카타르시스’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한 내공을 지녔다. ‘신라시대 남자 기생’이라는 흥미로운 소재 발굴만으로도 큰 성과 아니던가. 내일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