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시대는 사라지고 연기만 남아

<댄싱퀸>

<댄싱퀸>은 편의점의 펀치드링크 같다. 80년대 코드와 정치 이슈, 여성의 자아 찾기 같은 ‘공식’들을 한데 저어놓는다. 그래서 전두환의 신군부 시절인 82년의 ‘국민학교’에서 ‘민주적인’ 토론을 하고,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92년엔 ‘천안문 사태’를 패러디한다. 주인공들마저 ‘그 유명한 X세대’로 설정했지만 정작 영화에 등장하는 건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전람회가 아니라 김완선과 시나 이스턴이다.

덕분에 독재와 민주, 세대문화와 하위문화가 충돌하거나 뒤섞이던 어스름한 경계의 뉘앙스는 휘발되고 황정민과 엄정화의 ‘진짜 부부’ 같은 연기 궁합만 남는다. 이 맥락에서 주제곡이자 댄싱퀸즈의 데뷔곡 <Call My Name>은 시나 이스턴의 <Telephone>을 그럴듯하게 편곡했지만(음악은 괜찮다는 뜻이다) 시대적 분위기를 놓친다. 원곡이 로라 브레니건의 <Gloria>를 빼닮은 까닭도 있다.

사실 92년은 엄정화가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배우와 가수로 동시 데뷔한 해다. 그래서 신해철이 만든 엄정화의 데뷔곡 <눈동자>를 들고 그녀가 오디션에 출전하는 에피소드가 나왔더라면, 하는 ‘팬의 망상’이 미련처럼 남는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