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ing the Chickens to Scare the Monkeys>. ‘원숭이 겁주려고 닭 잡아죽이기’쯤 되려나? 지난주 폐막한 제29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스웨덴 감독의 작품으로 중국의 한 속담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난 이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나를 포함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올해의 영화로 선택했다. 영화는 중국의 어느 도시 외곽으로 보이는 황량한 벌판에서 7명의 사형수가 구경꾼들이 킬킬거리며 보는 가운데 군인들에게 총살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치 스너프필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엽기적인 오프닝 이후 영화는 처형당한 사형수 중 한명인 한 여성의 일상과 그녀가 체포되고 재판받는 과정을 시간의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보여준다. 그녀는 중등학교 음악교사쯤으로 보이며 가난한 살림살이지만 남편과 함께 갓난아이를 키우며 살다가 거리에서 공안들에게 체포되고 즉결재판에 회부되었다가 벌판에서 처형당한다. 영화에는 그녀가 어떤 죽을 죄를 지었는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아 단언할 수 없지만 그녀가 반체제 운동에 연루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 보였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했고 이 메시지는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영화 속 사건들은 마치 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몰래 촬영한 것 같은 느낌의 구도 안에서 벌어지는데, 이로 인해 영화의 사실감은 증폭되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전혀 없음에도 프레임 안팎으로 모아졌다가 확장되는 공포와 긴장감이 대단히 기술적으로 조율되었다. 심사위원장이었던 도미니크 카브레라 감독의 표현대로 완벽한 미장센의 승리였다.
이 영화의 기술적 성취와 정치적인 메시지에 몹시 흥분해 있던 나는 친분이 있는 중국쪽 영화 관계자에게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았다. 그는 이 영화의 구도가 훌륭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배우들의 발음과 연기가 어색하고 화면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박한 평가를 내렸다. 영화제에 참석한 일본의 한 저명한 영화감독도 이 영화에서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시각화할 때 종종 범하는 어떤 못된 시선이 노골적으로 느껴져 불편했다고 고백했다.
가만 돌이켜보니 과연 영화에 등장하는 중국인들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전혀 없이 야만이 횡행하는 거리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들로 묘사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지지가 온전히 정당한 것인가 반문해 보았다. 동양을 경멸과 교화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서양의 삼류 제국주의적 시선에 나도 모르게 포로가 된 것은 아닌가? 만일 영화의 배경이 중국이 아니라 북한이었다면, 아니 한국사회의 어떤 추악한 일면에 서양인들의 (다소 굴절된) 현미경을 들이댄 것이었다면 나는 그 영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불쾌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그런 영화들이 많이 나와주길 기대한다. 명백한 추악함이 있고 그것이 야만의 근거가 된다면 다소 왜곡된 외부자의 시선일지라도 눈 질끈 감은 내부자의 ‘고통스럽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보다 정당하다. 나를 반성케 하고 너의 생각을 교정할 수 있는 상호 비판적인 텍스트들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진짜 용감한 영화들이 보고 싶다.
이 영화에 대한 추가정보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