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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똥고집보다 소통이 필요해

가까운 관계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드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습관이나 가치관의 차이로 마찰이 있을 때 부부나 부모 자식간의 언쟁은 종종 앞뒤가 맞지 않는 똥고집 배틀이 되곤 한다. 후련하게 잘 싸우고 금방 화해한다고 믿는 관계도 실은 한쪽이 끙끙 앓는 경우가 많다. KBS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가족이나 연인, 동료나 친구 사이에서 이런 패턴의 감정싸움을 수도 없이 반복했을 법한 이들이 고민을 유발했던 사람과 함께 출연한다. 신동엽, 이영자, 정찬우, 김태균 입담 좋은 네 MC는 사연을 읽어주고 출연자의 하소연과 해명을 듣는다. 그리고 150명의 고민평가단은 해당 사연이 고민이라 생각하면 버튼을 눌러 그주의 우승자를 뽑는다. 객석 이곳저곳에서 다다다닥 버튼을 누르는 소리는 흡사 <TV쇼 진품명품>의 감정가 숫자 올라갈 때 같은 스릴이 있다. ‘조류 공포증’ 등의 심리적 고민이나 엄청나게 많은 머리숱 등 신체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지만 역시 흥미를 끄는 건 가까운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이다.

청국장 샐러드, 마른 해산물을 갈아넣은 셰이크 따위의 괴이한 건강식 신봉자인 어머니의 요리를 견디다 못해 출연한 딸의 사연.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엄마가 주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통에 결국 위염으로 입원을 했던 20대 여성의 고민이 기억난다. MC들에게 “5대 영양소가 모두 들어 있다”, “딸이 잘 먹는 게 소원”이라고 답하는 두집 어머니들은 야속하고 억울한 표정마저 비슷하다. 선의와 억지가 결합한 엄마들 특유의 고집이랄까. 어두워야 마음이 편해서 불을 켜지 않는 한 가장 때문에 컴컴한 집에서 생활하는 아내와 아이들. 해병대 출신 아버지가 딸자식의 해병대 입대를 강요하는 사연 역시 논리의 영역을 벗어난 가부장의 고집으로 인해 다른 식구들이 불편을 겪는 이야기다. 부모만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최근에는 아버지 지갑 속 ‘행운의 2달러’부터 동생의 커플티까지 가족의 애장품을 본인의 자취방으로 실어나르는 딸 때문에 속을 썩는 아버지가 출연했다. 심드렁한 얼굴로 “가족끼린데 뭐가 고민인지 모르겠다”던 딸 덕분인지 그주 우승을 차지했다.

생각해보니 <…안녕하세요>는 내가 일주일의 TV프로그램 중 (야구중계를 제외하곤)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프로그램이다. 크게 웃고 나도 모르게 구시렁거린다.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한발 물러서면 될 것 같은데 그거야 말이 쉽지. 가까운 사이일수록 ‘네가 나를 이해하고 막아줘야’ 한다는 심리가 이성을 가로막는다. 돌이켜보면 이른바 ‘허물없는 사이’에서 쌓이는 트러블은 그들 주변의 현자들이 저마다 입바른 소리를 보태도 상황이 나아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

네 MC들은 네 가지의 독립된 사연을 소개하면서 별 연관이 없어 보이던 각각의 사연과 출연자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웃음을 끌어낸다. 어린애 같은 고집을 부리는 고민유발자들을 꾸짖는 것보다 다른 입장들을 생각하게 하는 가벼운 등 떠밀기를 택한다. 고민의 당사자와 객석에 앉은 고민유발자 사이에서 바지런하게 묻고 반응하는 것은 대개 MC와 방청객의 리액션이다. 갈등을 부채질해 스튜디오에서 드잡이를 하거나 눈물겨운 포옹으로 당사자들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연출은 없다. <…안녕하세요>가 제공하는 것은 묵은 감정의 살풀이나 똑 떨어지는 솔루션이 아니다. 다른 장소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적당한 거리, 습관이 되어버린 고집을 접어봄직한 적당한 계기 정도랄까. 기상천외한 자기 변호의 말과 표정도 내 가족을 떠올리면 그렇게 낯설지 않으니 거울을 보듯, 반성. 또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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