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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dget] 스캔학개론

벤큐 CP-100

사양 크기 269 x 44 x 59mm(W x H x D), 무게 391g

<건축학개론>에서 가장 재밌었던 장면 중 하나는 이제훈과 남자 선배의 대화였다. 이제훈이 1기가바이트 하드디스크를 장착한 PC를 구입한 선배를 보며 부러운 듯이 말한다.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 쓰겠네요.” 지금이야 스마트폰의 메모리 크기도 1기가바이트는 우습지만 90년대에는 정말 그랬다. 어디 PC만 그랬을까. 스캐너는 더했다. 스캐너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고, 있어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와 가격을 자랑했다. 이제는 스캐너는 물론이고 프린터와 스캐너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복합기 형식까지 보편화됐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 하지만 사람이란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라, 스캐너가 보편화된 지금은 공간의 문제가 생겼다. 가뜩이나 좁은 책상 위에 평판 스캐너가 자리할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게다가 기존의 평판 스캐너는 생각보다 그 과정에 손이 많이 갔다. 생각해보라. 스캐너의 뚜껑을 열고, 종이를 크기에 맞게 놓은 다음 뚜껑을 닫고, 다시 종이를 꺼내야 한다. 까짓 거 뭐 그리 힘들어 죽을 일일까마는 스캔해야 할 양이 많을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말 그대로 ‘노가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속 터져 죽는다.

벤큐의 CP-100은 기존 평판 스캐너의 단점을 크게 보완해 나온 소형 스캐너다. 이 스캐너의 크기는 고작 A4 용지의 1/4 정도다. 여자들의 핸드백에 넣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어떻게 이렇게 작아질 수 있었을까. 기존 평판 스캐너는 유리판 위에 문서를 놓으면 광학블록이 모터로 움직이면서 문서를 읽어나가는 형식이었다. 당연히 큰 면적이 필요했지만 이 소형 스캐너는 (보통 인기 많은 남녀들이 그렇듯) 스스로 움직이는 대신 종이를 움직이게 만들고 그 데이터를 저장하는 형식이다. 평판 스캐너에 비해 사이즈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이유다. 무엇보다 이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간편함이다. PC와 연결돼 있지 않아도 되고, 포토숍 같은 구동 프로그램을 실행할 필요도 없다. 메모리 카드가 삽입된 채로 전원을 켜고 원본을 넣기만 하면 자체 메모리 카드에 스캔 파일이 저장된다. A4 한장 크기를 스캔하는 데 드는 시간은 10초 정도. 뚜껑을 열고 닫는 번거로운 과정이 없으니 시간은 더욱 줄어드는데, 특히 많은 서류를 스캔해야 할 경우에는 활용도가 높다.

단점이라면 역시 크기다. A4 용지의 크기에 최적화돼 있어 그 이상은 스캔이 불가하다. 해상도의 크기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300dpi가 기본이고 최대 600dpi다. dpi는 화면 1인치당 찍히는 점의 개수다. 디지털카메라의 화소 같은 단위라고 생각하면 된다. 최근 잘 팔리는 평판 스캐너들이 보통 4800dpi, 많게는 그 이상의 해상도를 가진 걸 생각하면 꽤 아쉬운 수치.

하지만 업소 현수막 정도 크기로 실사 출력할 생각이 아니라 A4 크기 정도의 출력을 생각한다면 300~600dpi는 충분한 해상도다. 보통 디지털로 보관할 때는 편의상 150dpi 정도로 스캔하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하면 말이다. 충전 기능이 없어 항상 어댑터를 휴대해야 하는 점이나, USB3.0이 지원되지 않는 것도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지만 제품 자체만 놓고 보면 꽤 훌륭한 수준이다. 참, 길쭉한 막대기 모양이라 손에 쥐기도 쉬운데, 밤에 치한을 만나면 호신봉 용도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리쳤을 때 큰 충격을 줄 것 같지는 않지만. 14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