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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98%의 허세에 2%의 비애가

<음악의 신>, 페이크 다큐멘터리에서 하드코어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로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정한 ‘그루브’라는 것을 느껴본 적은 홍대 클럽에서도 록페스티벌에서도 아닌 중학생 시절 경주 수학여행에서였다. 학급별 장기자랑 때, 전교에서 좀 논다 하는 아이들 넷이 나와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춤을 췄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경주 어느 여관의 지하 강당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신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천사를 찾아 샤바 샵사바 천사를 찾아 샤바 샵사바”에 맞춰 미친 듯이 엉덩이를 두드리는 수백명의 중2들이라니, 밖에서 보았다면 실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룰라, 그리고 이상민 인생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길지는 않았다. 이후 <3! 4!>를 비롯한 히트곡이 있었지만 <천상유애> 표절에 이은 이상민의 자살 시도 소동, 이혼, 스캔들, 사업 실패, 불법 도박 등 보는 사람이 지칠 정도의 사건 사고가 이어졌다.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태어난 뒤 2년 동안 이름이 없이 ‘애기’라 불렸다”는 고백으로 ‘이애기’라는, 어이없이 귀여운 별명을 얻었을 때를 제외하면 화려했던 과거가 거짓말인 양 심란한 근황만이 들려왔다.

Mnet <음악의 신>은 그런 이상민, 한때 톱이었지만 지금은 바닥까지 떨어진 불혹의 가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거창하기 그지없는 제목은 물론 ‘2012년 당신을 울릴 감동 실화’ 같은 부제까지 내걸었지만 사실 이 작품은 허세의, 허세에 의한, 허세를 위한 정신승리 프로그램이다. L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재기를 꿈꾸는 이상민이 아직 잘나가는 옛 동료들에게 전화 걸었다 무시당하고, ‘오디션과의 전쟁’을 선포하지만 Mnet <슈퍼스타 K4>에서 심사위원으로 불러주었다며 설레하고(실은 ‘잊혀진 가수’ 컨셉으로 오디션에 참가하라는 제안이었다), 유산균 음료 회사의 투자를 받기 위해 즉석에서 “헬리코박터균이 싫어요” 송을 만들어 부르는 모습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기보단 신랄한 블랙코미디로 점철된 시트콤에 가깝다. 심지어 같은 룰라 출신이지만 지난해 연기자로 변신해 이상민보다 살짝 잘나가게 되자 “그 감독님이랑 나는 아삼륙이지”라며 거들먹거리는 캐릭터로 주·조연을 담당했던 고영욱이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피소되면서 <음악의 신>은 졸지에 하드코어 리얼리티 다큐멘터리가 되고 말았다. 뚱뚱하고 굼뜬 매니저를 하대하며 툭하면 “이 XX, 저 XX”라며 손을 쳐들고, 과거의 온갖 잘못을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이상민의 태도 또한 뒷목이 따끔거리게 불편할 때도 많다.

그러나 보고 있으면 “미쳤나봐!”와 “ㅋㅋㅋㅋㅋ”를 번갈아 내뱉게 되는 <음악의 신>은 영혼의 MSG처럼 괴상한 중독성을 지닌 프로그램이다. 마지못해 선배 대접해주는 신인 아이돌 앞에서 “99년에는 내가 만든 애들이 1위부터 10위까지 하고 그랬잖아”라며 큰소리치고, 매니저더러는 발렌타인 17년산을 사오라고 해놓고 선물할 때는 “30년산을 잘못 사온 모양”이라며 구질구질하게 둘러대는 이상민은 ‘남자의 허세’에 대한 논문을 쓴다면 누구보다 풍부한 표본이 될 만큼 흥미롭게 뻔뻔하고 찌질해서 폭소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상민(도박장 개설), 신정환(상습 도박)에 이어 고영욱까지 룰라 출신 남성 멤버 3명 모두 MBC 출연 금지가 결정된 날, <음악의 신>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신이 이끌었고 한때 ‘YG패밀리’에 비견되기도 했던 브로스의 <윈윈> 랩 파트를 읊조린다. “여기서 멈추지 마라 윈(Win)아(我) 윈아/ 내가 기다려왔다 인(忍)아 인아.” 특유의 허세가 밴 몸짓이었지만 한 소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고여 있었는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허세 98%에 비애 2%가 뒤섞인 그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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