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월 중순이다. 언제부터인가 5월이 되면 몸과 맘이 멀리 프랑스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칸으로 옮겨간다. 소위 말하는 칸영화제 13년차, 2000년에 처음 칸에 갔던 게 얼마 전 같은데 30대 초반의 패기 넘치던 젊은이는 이제 40대의 아저씨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 좋은 동네에 가니 얼마나 좋겠냐고 부러워하지만 사실 일하러 가는 사람에겐 처음 한두번이 좋지 그 뒤로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한 장소에서만 마켓이 열리는 AFM(11월에 LA에서 열린다)이나 FILMART(3월, 홍콩), 그리고 추억의 MIFED(지금은 없어진 밀라노에서 열렸던 필름마켓)에 비하면 칸 해변을 따라 쭉 펼쳐진 세일즈 회사들의 부스와 상영극장들을 걸어서 하루 종일 왔다갔다하는 칸마켓은 정말 지옥 같은 체력전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칸영화제에 갈까? 500명, 1천명? 아니면 그 이상? 아무도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칸영화제에 참석하는 가장 많은 사람들은 영화 제작자도 기자도 배우도 아닌 영화를 수입하는 일명 수입업자(바이어)들이다.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두꺼운 마켓가이드북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바이어와 셀러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거기에 등록된 한국사람들의 숫자는 130명 내외. 하지만 데드라인이 지나서 등록한 사람들은 빠진 숫자이기 때문에 실제론 최소한 그 숫자의 2~3배의 사람들이 영화를 사고 팔기 위해 멀리 한국에서 반나절 이상 비행기를 타고 칸에 온다.
칸영화제는 참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일단 마켓에 등록하는 비용이 40만원 정도다. 이게 없으면 영화도 볼 수 없고, 마켓이 열리는 메인부스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한국에서 니스까지 가는 비행기 요금은 아무리 싼 티켓이라고 해도 이젠 200만원이 넘고, 거기에다 숙소는 죄다 비싼 호텔 아니면 아파트 렌트뿐이다. 물론 싼 숙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일주일을 칸에 있으려면 1인당 하루에 20만원의 숙박비는 기본이다. 여기에 살인적인 식대까지 포함하면… 최소 1인당 400만원 이상이 든다. 이걸 모 개그맨의 유행어로 표현하면 ‘칸에서 400만원으로 일주일 보내기 어렵지 않아요, 그냥 1주일 내내 물과 샌드위치만 먹으면 돼요, 지겨우면 케밥도 있고 햄버거도 있어요’라고 할 수 있다.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칸으로 몰리는 이유는 그만큼 좋은 물건이 많기 때문이다. 화려한 레드카펫의 이면에는 영화를 비싼 가격에 팔려는 셀러와 싼 가격에 사려는 바이어들간에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한 영화일수록 가격은 올라가고, 그럴수록 한국에 수입해서 돈을 벌 확률은 낮아진다. 영화제에 오는 모든 바이어의 소망은 좋은 영화를 싼 가격에 사는 것인데, 요즘처럼 바이어들이 많아진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경쟁이 치열한 것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다. 소위 ‘개나 소나 다 왔다’라는 식의 표현들이다. 외국 셀러들은 말한다. 한국 바이어들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또 매년 새로운 회사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나라는 없다고. 경쟁부문에 2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되는 올해는 분명 어느 해보다도 많은 한국사람들이 칸에 모인다. 하지만 개나 소가 가기엔 칸은 비용이 너무 비싸다. 오직 영화판에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만이 거기에 모인다고 얘기하고 싶다.
칸영화제는 올해 65주년이다. 칸 마켓은 53주년을 맞이했다. <칸 마켓 뉴스>에 따르면, 올해 마켓 참가자는 지난해에 비해 9% 증가했다. 바이어 수는 지난해 1700여명에서 200명이 증가한 1900여명으로 집계됐다. 마켓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총 936편이고 그중 734편이 프리미어 상영이며, 협상 테이블에 오를 거래 작품은 4600여편으로 알려졌다. 칸 필름마켓 운영위원장인 제롬 파이야르는 “칸영화제의 65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린 건 아닐까?”라며 “어쨌든 우리는 사람들이 이곳을 원하고 있다는 걸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