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티베트에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역시 순탄치 않았는데 라싸에서 베이징까지 오는 칭짱 열차의 침대칸이 다 팔려 좌석칸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중국의 노동절 연휴 기간이 겹친 탓이었다. 티베트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여행허가서에 명시해놓은 일정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공안과의 마찰이 불가피한 터라 침대칸이 생길 때까지 며칠이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46시간 내내 어떻게 앉아가란 말인가! 예전에 호주 북부에서 중부까지 33시간을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온몸의 관절이 수십개의 부목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한 참으로 뻣뻣했던 기억이 생생한 나로서는 그보다 13시간을 더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했다. 하지만 열차에 오르자 이내 내가 참으로 팔자 좋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수많은 짐보따리를 이고 지고 탄 승객이 선반에 짐을 한가득 올려놓고 통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이 대륙 횡단 열차에는 입석(!)이 있었던 것이다. 발 디딜 틈도 없는 비좁은 통로에서 2박3일을 꼿꼿이 버텨내는 대륙인들의 인내심 앞에 내 불편함이 그저 사소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티베트에서 돌아와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초점이 맞지 않거나 구도가 어정쩡한 사진들을 지우고 내용에 따라 폴더로 나누고 나니 인물 사진은 거의 없고 풍경 사진들만 가득했다. 티베트 사람들의 삶의 표정에 관심이 없었던 건 물론 아니었다. 오히려 티베트의 경이로운 자연의 풍광보다도 정치적 폭압과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삶을 일구어내는 티베트 사람들의 어떤 숙연한 태도에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칭짱 열차에서 만난 고단한 승객, 한때 세계 최대의 사원이었다가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괴되어 이제는 흔적만 남은 저팡사를 지키는 늙은 라마승, 조캉 사원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쉼없이 오체투지를 하는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어린 소녀,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을 걸어가는 양떼와 양치기의 묵묵한 발걸음을 마주할 때면 형언하기 어려운 뭉클함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오곤 했다. 차라리 종교적이라 할 만한 그 성스러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애꿎은 카메라 줄만 만지작거리다 이내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물론 천성이 소심한 탓도 있겠지만 그들의 삶을 정지시키고 렌즈를 들이미는 행위가 내 딴에는 대단히 무례하고 폭력적인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방인의 한갓된 감상을 위해 저들의 삶을 액자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들이 이끌고 있는 삶의 시간들이 저들의 속도대로 천천히 지나가기를 바라며 한쪽에 비켜서서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그들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이자 내 마음속의 여운을 길게 유지하는 길이라 여겼다. 비록 누구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만 내 기억의 한켠에 선명하게 인화된 그 순간들이 한동안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