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의 완성은 요리프로그램. 적어도 내겐 고기 반찬 같은 존재다. 눈앞에 놓인 음식과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식사예절이겠지만 혼자 혹은 단둘만의 간소한 밥상에 어제 먹은 반찬을 두고 뭐 그리 신통한 대화가 오가겠는가. 그렇다고 아무거나 보자고 TV를 틀면 각종 보험, 상조, 사금융 광고를 피해 채널을 헤집어야 한다. 그렇게 찾은 프로그램도 5분 만에 끝나고 다시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광고 폭격이 이어진다. 혹은 밥숟가락을 던지고 싶은 면상의 그 양반이 뉴스에 나온다거나!
아무것도 안 보느니만 못한 사태를 피하려면 평소 좋아하는 음식프로그램을 녹화해두거나 다시보기하는 것이 좋다. 일드 <심야식당>, 영화 <카모메 식당> 등의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참여한 이이지마 나미가 간단한 레시피의 일본 가정요리를 소개하는 <시네마 쿡>도 괜찮고 일전에 소개한 <한국인의 밥상>은 제철 재료를 쓴 각 지역의 소박한 밥상에 마음의 숟가락을 올리는 기분이랄까. 장염에 걸려 팔다리가 후들거리던 어제는 죽 그릇을 앞에 두고 미뤄뒀던 올리브TV의 <마스터 셰프 코리아>를 시청했다. 스스로 이 무슨 변태 같은 짓거리인가 한탄했지만 뭐, 어차피 먹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3회를 앞두고 있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는 강레오, 김소희 셰프와 푸드 마케터 노희영씨가 아마추어 요리사들의 시그니처 디시를 심사해 1차 도전자를 추려냈다. 중장비를 다루는 건설업자, 한쪽 귀가 불편한 도전자, 돌잡이 젖 말리고 나왔다고 애원하는 엄마. 사별한 남편을 위한 요리, 아픈 아내를 위한 요리, 마약까지 손댔을 때 아버지가 해주신 요리, 요리사를 반대하는 어머니를 위한 요리 등 도전자들의 캐릭터도 접시에 담긴 사연도 다양하다. 하지만 역시 눈물과 사연과 캐릭터를 파는 오디션이라고 싫증을 낼 법도 하다. 미국판 <마스터 셰프>를 볼 때도 그랬으니까. 미련하고 때론 사악하며 자기중심적인 요리사들을 독설에 마리네이드해 전쟁터 같은 주방에서 구워내는 <헬’s 키친>의 고든 램지(!)가 호스트인데 욕도 별로 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관대하며 가정요리도 높게 평가한다. 접시를 앞에 두고 도전자의 사연과 집안 내력을 묻고 답하는 모습도 한국판과 매우 흡사하다. 이 물렁한 쇼가 재미있어진 것은 1차 도전자들을 양파 썰기와 달걀요리 과제로 걸러낸 뒤부터다. 암만 요란한 사연이 있어도 양파 하나 제대로 썰지 못하고 달걀을 절묘하게 익히지 못한다면 가차없이 탈락. 이 쇼가 필요로 했던 것은 단지 사연이 아니라 가족사 혹은 이민사에 담긴 각 지역의 대물림된 레시피였던 것이다. 도전자들은 이를 토대로 때론 생전 처음 보는 식재료, 조리해본 적 없는 음식 미션을 창의적으로 풀어가고 여기서 드라마가 탄생한다.
강레오 셰프가 (도전과제로 나올) 양식을 할 수 있겠냐고 묻자 ‘양식은 돈가스와 비후가스’밖에 모른다고 자지러지게 웃던 ‘닭다리 해물찜’ 아주머니는 선명한 눈썹문신만큼 자신감있는 요리관을 내비치는 인상적인 도전자였다. ‘애탕과 가지 대구 꼬치구이’를 들고 나타난 도전자는 친정어머니에게 대물림한 요리로 심사위원을 공략했다. 가정요리 달인다운 스타일링도 완벽하고 제철 재료와 조리법으로 세운 전략을 보면 최고령이자 예선 최강자로 꼽아도 손색없다. 한식 세계화를 외치는 건 이제 신물나지만, 감각이 뛰어난 가정요리 달인들이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을 익혀서 내놓을 새로운 접시와 레시피북이야말로 기대할 만하지 않은가? 눈물 짜는 사연타령에 지쳤다면, 3회 예고편의 트럭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양파 무더기를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