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9월23일까지 장소: 대림미술관 문의: 02-720-0667
세상에는 의자가 참 많다. 지하철에도 의자, 카페에도 의자, 사무실에도 의자. 의자에 앉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이토록 많은 의자 중에서 이름을 가진 의자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덴마크 태생의 디자이너 핀 율(Finn Juhl, 1912∼89)은 펠리컨 날개를 닮은 <펠리컨 의자>(Pelican Chair, 사진)를 만들었다. 과자 빼빼로의 갈색 부분을 확대해놓은 통통한 의자 다리 위에 하늘색 계열의 천이 양옆으로 나온다. 꼭 펠리컨의 형태를 빼닮았다기보다 날개를 펼친 어떤 새의 품 같다. 핀 율의 가구는 장인의 손길로 꼼꼼하게 바느질한 ‘디테일’이 핵심인데, 초창기 가구 공방 제작자들도 왜 이렇게 유별나게 꼼꼼해야 하나 핀 율의 선택을 이해하기 힘겨워했다고 한다.
건축가 출신에 독학으로 가구 디자인에 뛰어든 핀 율은 처음에는 자신의 집에 두고 쓸 가구를 만들었다. 그래서 기존 방법론이나 전통에 사로잡히지 않고 제 가구를 상상했다. 핀 율의 트레이드마크인 <치프테인 의자>(Chieftain Chair)도 인디언 추장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지만 무엇보다 핀 율 자신의 벽난로 곁에 두려고 구상한 것이었다. 이후에 덴마크 국왕이 너무 좋아해 왕의 의자로 불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지 않은 핀 율은 1951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굿 디자인> 전시에 참여한 일이 계기가 되어 50년대부터 ‘대니시 모던’(Danish Modern)의 대표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미국인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인기 냉장고를 만들기도 했고 유엔(UN) 본부 건물 인테리어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가 손댄 사물과 가구는 유기적인 곡선으로 부드러움이 느껴지면서도 깔끔하고 선명하다. 북유럽 가구 특유의 말끔한 ‘우유 빛깔’이 느껴진다. 핀 율의 가구는 세계의 가구공장이라 불리는 스웨덴 브랜드 ‘IKEA’가 자주 재해석하고 오마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시장에서는 핀 율의 가구와 드로잉, 사진 자료뿐 아니라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다른 디자이너들의 가구도 볼 수 있다. 핀 율이 만든 <Sofa Poet>에 앉으면 내 글쓰기 노동은 어떻게 달라질까. 비닐을 이제 막 뜯은 영감어린 의자에 앉게 된다고 해서 180도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핑계삼아 난 너를 대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