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석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제외될 수 없는>은 숨겨진 수작이었다. 인물들과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들이 어울려 서로의 인상을 상승시키는 영화였다. 하지만 극장 개봉에 이르진 못했다. 최용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이방인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 젊은 여인이 가족사에 얽힌 기억을 안고 고향을 방문하는 이야기다. 여전히 인물과 공간에 관한 자기의 미학이 고수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개봉을 염두에 두고 충무로의 배우들을 기용하여 무언가 대중과 제도와의 접점을 찾아 나선 흔적이 엿보인다. 최용석 감독을 만나 그 과정에 대해 물었다.
-두 번째 장편이지만 첫 번째 개봉영화다. =영화제 등에서 상영되었으니 소개가 좀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소개가 덜 됐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상영한다는 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다. (웃음) 무엇보다 스탭과 배우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보답하는 길이 되었으면 한다. 애초에 제도권 영화에 가깝게 만들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개봉도 염두에 뒀었고. 하지만 촬영장에서는 나만의 방식대로 가니까 스탭들이 좀 힘들어했다. (웃음)
-<이방인들>은 공간에 대한 느낌이 그 시작이라고 들었다. =촬영지는 부산 강서구 지역이다. 김해공항 인근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우연히 지나다 그곳 풍경을 보게 됐다. 낙동강과 김해평야를 걸친, 말은 부산이지만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도시와 시골의 어중간한 경계지점이다. 저런 공간에 한 인물이 들어오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무언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원래는 그 낯선 공간에 젊은 남녀가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2년 정도 왔다갔다하며 일기 쓰듯 시나리오를 쓰다보니 한 여자가 들어오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영화를 만들 때 늘 공간이 먼저인가. =그게 내 영화적 방법론이라고 규정한 적은 한번도 없다. 하지만 성향이 그런 것 같다. <이방인들>하고 <제외될 수 없는> 사이에 단편영화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돌이켜보면 무언가 공간이 중심인 영화였다. 공간에 관한 이야기만 전격적으로 해야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낯선 공간에 갔을 때 내가 거기에 매료되는 게 많은 것 같다. 나 스스로 어떤 낯선 공간의 이미지들을 볼 때 자연스럽게 많은 상상을 일으키는 것 같다. 요즘은 내가 왜 공간에 대해 집착하는 것일까, 하고 그 이유를 복기해보는데, 그건 내가 기억이라는 문제에 집착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그 기억을 설명하기 위해서 플래시백 등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 그 때문에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영화가 좀 심심하다는 평이 있다. (웃음) =플롯에 관련된 것들이 삭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이전 영화들보다 설명을 훨씬 많이 했다. (웃음) 그동안은 인물의 감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많이 경계했다. 이번에는 어쨌든 인물들의 감정에 대해서도 설명을 한번 해보자는 쪽이었다. 어쨌든 나의 연출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연출 스타일인가. =이른바 안정적인 장면들이나 스테레오 타입을 기피한다.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이댈 때 직관적으로 내게 맞는 것들이 생기고 그럼 그걸 따른다. 일종의 제도적인 영화의 형식에 맞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내가 생각할 때 그 인물이 그 공간과 딱 맞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 그걸 택한다. 그럴 때 촬영감독이나 배우들에게 설명하는 게 참 어렵다. (웃음) 어쨌든 나 스스로가 현장에서 가장 편안한 앵글을 찾으려 하고 그것대로 가려고 한다.
-부산 영화계를 이어가는 감독이라는 세간의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수일 감독님이 계신데? (웃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불리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바람이 있다면 영화 그 자체로 먼저 설명되는 것이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전에는 안 했던 생각을 요즘 한다. 영화를 통하여, 나의 영화적 방식을 통하여, 사회를 설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그게 정치이든 사회이든. 이전까지는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그걸 영화로 만들었다. 지금은 내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의 아픔에 관해서도 표현해보고 싶다. 다만 지금의 내 영화 방식대로 말이다. 그런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 요즘 나의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