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함께했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다. 가문의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계절의 영광으로 쳐주고 싶은 사건이었다. ‘사람과 음악’이라는 코너였는데, 선곡부터 애를 먹었다. 다섯곡? 세상에, 나의 30년 음악인생을 고작 다섯곡으로? 시디장을 보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김중혁이라는 사람을 어떤 음악으로 설명해야 하나. 설명이 되긴 되나. 그렇게 힘들게 고른 다섯곡의 음악이 무엇이냐 하면, <배철수의 음악캠프> 게시판에 가서 보시고요, 하하, 첫곡만 알려드리자면 킨크스(Kinks)의 <Sunny Afternoon>이었다. 라디오에서도 말했지만 킨크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엉성함 때문이다. 비틀스 때문에 음악과 사랑에 빠졌고, 여전히 그들의 노래에 감탄하지만, 이상하게 깊은 정이 느껴지질 않는다. 완벽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비틀스에 비해 킨크스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레이 데이비스의 까끌까끌한 목소리가 좋고, 후크(hook)로 가득한 매력적인 팝송을 만들 줄 알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마추어 같기도 하고, 악기 하나가 빠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운드가 앙상할 때도 많고, 새로운 실험 같은 걸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비틀스보다는 킨크스, 그게 내 취향이 됐다. 비틀스같이 완벽한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킨크스 같은 엉성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게 내 바람이다.
이런 말 들으면 멤버들이 섭섭해하겠지만 논(Non)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뭔 노래들이 이렇게 허술해 보인담.’ 음반 곳곳에 총체적 허술함이 묻어 있었다. 노래를 잘 불러야겠다는 의지도 별로 없어 보이고, 랩인지 내레이션인지 알 수 없는 해괴한 창법이 등장하는 노래도 있고(<복잡한 심정>) 레게와 사이키델릭과 포크가 사이좋게 겸상을 하는 진풍경이 곳곳에 등장해서, 이게 대체 뭐람 싶은 대목도 여러 곳이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이 음반 참, 늪 같다. 발이 푹푹 빠진다.
가사의 센스도 일품이고- ‘매일 마시며 노래하고 싶지만, 예쁜 아가씨와 얘기하고 싶지만, 길담배 피우며 거리를 걷고 싶지만, 하지만 난 군인이라네. 아, 군인이래, 얼마나 슬퍼’- 처음에는 허술한 구성이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 허술함이란 감상자들이 끼어들 여지를 만들어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가 음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뮤직 퀄리티>인데,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면서 이 노래를 듣다보면 허술하고 단출하다는 게 실은 얼마나 좋은 퀄리티의 뮤직인지 새삼 깨닫는다. 수십 가지 반찬이 놓인 화려한 한정식보다는 이렇게 1식3찬의 단출한 메뉴가 밥맛을 느끼기에 더 좋다는 걸(양현석씨 책임져요, 나도 모르게 자꾸 음식 비유하게 되잖아요!) 깨닫게 된다. 음반 제목도 그래서 ≪Sound Of Non≫인 거겠지. 논의 사운드, 내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