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우정 모텔≫ 앨범 속에 수록된 <생두부>라는 곡이 있다. 최근에 내가 가장 열광적으로 좋아한 가요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느릿한 곡조의 유장한 매력이 있는 데다가 가사가 압권이다. 특히 이 부분이 그렇다. ‘내 방의 고요, 동네의 정적, 우주의 큰 침묵 속에서, 나만 떠드네. 우~ 난 언발란스!’
그럴 때 없나? 나 혼자만 떠들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외로워질 때. ‘문명의 실어증’ 앞에서 나 혼자만 ‘언발란스’하게 떠들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슬퍼지는 때? 내 경우 일방통행 매체인 텔레비전 앞에서 다들 과묵하게 앉아 있거나 좋다고 박장대소하며 웃고 있는데 나 혼자만 씨부렁씨부렁 불만을 토해낼 때 그런 느낌이 든다. 텔레비전을 보며 혼자 욕을 하는 여자라니. “야, 야, 입 닥쳐. 너도 아나운서냐? 그걸 뉴스라고 내보내? 무슨 놈의 아나운서가 존심도 없이 만날 버라이어티쇼 재탕하는 얘기만 그렇게 나불나불하냐고? 아으 무뇌아.”
정말이다. 언제부터인가 TV를 켜면 절로 나왔다. 욕이 KBS, MBC, SBS, YTN(종편은 아예 채널 신호를 지웠다!) 어느 채널을 틀어도 저절로 튀어나왔다. 특히 정부의 대리인들이나 다름없는 낙하산 ‘새끼’가 방송국을 점령하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자기들은 공영방송이라고 우기며 꼬박꼬박 시청료를 전기세에 포함시켜 영악하게 챙겨가는 KBS를 볼 때 특히 더 ‘된 욕’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공영방송? 아주 지랄하고 자빠졌네. 차라리 개구리 옆구리에 날개를 달지 그래.” 총선 전후 거의 모든 방송사에서 김형태나 문대성 의원의 추문에 대해선 침묵하고 ‘김용민의 막말 파문’ 뉴스만 연일 지겹도록 반복하고 있을 땐 “이걸 돈까지 내면서 보는 내가 병신이지… 안 본다, 절대, 앞으로 눈깔이 다섯개라도 안 볼 거다. 정말. 이런 개…, 아니 이 개떡들아”, 했다. 우리 오빠 말이 맞다. “시청료, 흥 내가 왜 내? 받아야지. 얼어죽을 텔레비전을 왜 사? 지들이 줘야지. 자동차를 껴주든지.” 농담 아니다. 얼마 전 MBC <뉴스데스크>에서 앵커가 클로징 멘트를 하기 전 ‘까르띠에’ 광고가 3분 정도 방영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땐 입으론 “이게 무슨 병신 짓이야?” 하면서도 머리로는 혹시 방송 사고마저도 수익성 광고로 이용할 만큼 장삿속이 점점 더 대범영악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또다시 쌍욕이 돋았다. 과장 아니다. 어느새 텔레비전은 ‘우리의 수령, 통령, 우리의 갑’으로서 일상과 사고를 통제한다. 철저히. 그러니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시청자라면 돈 받고 보거나, 그게 아니면 아예 거부하거나, 둘 다 안되면 최후의 방법으로, 하는 수 없이 보게 되더라도 소신껏 욕을 해주면서 봐야 한다.
웬일인지 요즘은 소로가 세금 납부를 단호히 거부해서 감옥에 갔던 일이 자주 생각난다. 노예제도와 전쟁을 반대해서 미국 정부가 새롭게 인두세를 제정하자 그 돈이 노예를 사는 데 쓰이는지,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총을 만드는 데 쓰이는지 알 수 없다며 세금 내기를 거부했던 그다. 그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된 소로를 찾아와 에머슨이 물었다고 한다. “자네는 왜 이곳에 있는가?” 소로가 대답한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습니까?” KBS, MBC, YTN 등 방송 3사가 역사상 처음으로 합동 최장기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전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땜빵용 방송을 만들고 있는 방송인을 볼 때마다 내가 묻고 싶어지는 말이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습니까? 자동차를 껴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