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쿠 지방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일본인들이 보여준 침착한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가족을 잃었다고 울부짖지 않았고, 대응이 늦는다고 정부를 성토하지도 않았다. 그저 폐허가 된 집터에서 남은 옷가지를 챙기며 묵묵히 복구에 들어갈 뿐. 한국인들은 여기에 두 가지 상반된 방식으로 반응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며 부정적으로 놀라워했고, 어떤 이들은 “우리도 저런 것은 배워야 한다”며 긍정적으로 놀라워했다.
일본인들의 이 놀라운 침착함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 따르면, 이른바 ‘메이지 유신’은 일본사회를 철저히 근대화하였으나, ‘존왕양이’라는 구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 방식은 매우 복고적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시민계급이 ‘아래에서부터’ 만들어낸 개혁이 아니라, 기업가로 변모한 사무라이와 돈으로 사무라이를 산 상인들의 연합세력이 ‘위에서부터’ 만들어낸 개혁이었다.
루스 베네딕트는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결론을 내린다. “일본인은 (…) 결코 혁명가가 되지 않는다.”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재해를 당한 일부 지역에서는 며칠 동안 구호의 손길이 아예 닿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인터넷은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을 거다. 원전을 지을 때 일본 정부는 원전이 안전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만약 그런 참사가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이미 정권이 무너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일본인이 특유의 침착함을 위해 거세해야 했던 것은 혹시 ‘열정’이 아닐까? 한국의 4·19 혁명이나 5·18 민주화 운동, 87년의 6월항쟁, 가장 최근의 예로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등은 ‘열정’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래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이 ‘열정’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가 아닐까? 아무튼 일본에서는 민주화마저도 메이지 유신처럼 위에서 아래로조용히 이루어졌다.
정념을 지배하라
서구인의 침착함은 일본인의 그것과는 구별된다. 물론 서구인이라고 모두 냉정한 인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도 라틴 계열의 민족은 우리 못지않게 정서가 풍부하다. 물론 문화와 전통의 차이도 한몫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근대화 과정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라틴 계열에 속하는 나라들은 서구에서도 근대화가 뒤늦었던 쪽에 속한다. 근대화가 뒤늦게 일어나다 보니 그에 따른 인성의 변화가 늦었던 것이리라.
데카르트는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감각을 의심하고, 상상력을 배제하고, 정념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세인들은 사태를 판단할 때 이성적 추론보다는 감각의 확신성에 따랐고, 분별력보다는 상상력을 좋아하여 허구적 대상들(천사, 악마, 요정, 괴물)의 존재를 믿었고, 냉철한 계산보다는 명예욕과 같은 감정의 진정성에 따라 행동하기를 좋아했다. 이 ‘뜨거운’ 중세적 인성을 ‘차가운’ 근대적 인성으로 바꾸어놓는 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기획이었다.
한마디로,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철학은 ‘근대인’을 만들어내려는 철학적 기획이었다. 이는,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탁월하게 분석한 것처럼 감옥, 병원, 군대 등 다양한 제도를 이용하여 국가에서 강제로 수행하는 유물론적 생체공학(bio-engineering)의 이론적 전조(前兆)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 기획의 일환으로 데카르트는 ‘정념론’을 쓴다. ‘정념’(passion)의 정체를 파악하기만 하면, 이성으로 그것을 정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정념을 이용하라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흔히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실 이성으로 감정을 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령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다. 한마디로 인간은 무의식적 욕망에 따라 움직일 뿐이고, 의식은 사회적 금기를 피해 그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을 찾거나, 그 욕망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찾는 데에 사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경험주의자들은 데카르트보다는 현실적이었다. 흄은 이성으로 정념을 지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정념을 정복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그는 우선 정념을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강렬하나 일시적인 정념, 또 하나는 온건하나 지속적인 정념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전자, 즉 강렬하나 일시적인 정념이다. 왜? 우리가 저지르는 대부분의 오류는 순간적으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성으로 정념을 정복할 수 없다면, 남은 것은 정념으로 정념을 지배하는 길뿐, 문제가 되는 ‘강렬하나 일시적인’ 정념은 오직 또 다른 정념, 즉 ‘온건하나 지속적인’ 정념으로만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당장 놀고 싶은 욕망은 강렬하고 일시적이나, 나중에 출세해서 더 편한 삶을 살고 싶은 욕망으로 얼마든지 억제할 수가 있다.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인 셈이다. 이 흄의 제안을 우리는 일상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앨버트 허시먼은 <열정과 이해관계>라는 책에서 이 근대적 프로젝트의 최종산물이 바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인간형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근대인은 ‘경제적 물욕’, 즉 ‘이해관계’(interest)라는 ‘온건하나 지속적인’ 정념 하나로 다른 모든 정념들을 억압하는 냉정한 ‘경제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열정에서 냉정으로. 이 인성의 변화는 역사적 필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서적 삶의 생생함은 간단히 희생되고 만다.
아마도 이것이 일본인의 침착함을 이루는 또 다른 요소일 것이다. 예를 들어, 상점에서 고객이 불평을 한다고 하자. 한국인이라면 처음에는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다가도, 고객이 불평을 멈추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화가 치밀어 “나, 장사 안 해”라고 외치며, 고객과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할 것이다. 일본에서라면 어떨까?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상점의 주인이나 회사의 직원이 고객과 말다툼을 벌인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결과는 어떨까? 무례한 고객까지도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불쾌하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다. 한국인처럼 일시적 정념의 흐름에 빠져 장기적 이익을 저버리는 것이 일본인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반면, 아무리 이익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런 모욕을 참고 견디는 일본인이 한국인의 눈에는 징그러워 보일 것이다. 이것이 두 민족이 서로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민족적 편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인성의 차이는 한국이 근대화에서 일본에 뒤처진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의 인성은 일본인의 그것에 비해 전근대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에 오직 하나의 길만 있어, 모든 사회가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탈근대’의 철학과 더불어 근대의 단선적인 발전사관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근대적 프레임을 벗어버리면, 물론 사태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한국인의 ‘열정’은 공적으로는 정치적 혁명의 원동력을, 그리고 사적으로는 정서적 생활의 풍부함을 의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