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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강병진 사진 백종헌 2012-04-10

<땡큐 포 더 무비> 출간한 CBS 라디오 신지혜 아나운서

CBS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음악>(이하 <신영음>)의 진행자인 신지혜 아나운서가 책을 냈다. 제목은 <땡큐 포 더 무비>. ‘고단한 어른아이를 위한 영화 같은 위로’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책을 읽고 그녀를 만나러 갔던 지난 4월2일, 급습한 추위와 함께 때아닌 눈발이 날렸다. 몸과 마음이 을씨년스러웠던 그때, 신지혜 아나운서는 <어바웃 어 보이>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첫곡으로 내보냈다. “하늘과 대기와 아스팔트와 마음이 진한 색이었어요. 그때 마커스가 생각났죠. 오늘의 아스팔트 같던 엄마를 바라보던 마커스의 얼굴이 떠오른 거예요.” 영화 속 마커스는 이 노래로 엄마를 위로한다. 그리고 이 노래와 노래가 담긴 영화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만난 <신영음>의 청취자를 위로한다. 그녀의 책이 그녀의 방송을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화요일입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의 선곡 기준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주말 내내 근무를 했든, 여행을 했든, 푹 쉬었든, 월요일이 주는 부담이 있어요. 그래서 월요일의 첫곡은 ‘준비운동’ 같은 느낌을 생각해요. 귀에 익숙한 곡,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곡, 그 정도 선에서 월요일의 오프닝곡을 고르는 편이죠.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비슷한 기준이긴 하지만 선곡의 폭이 좀더 넓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그날의 분위기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땡큐 포더 무비>는 <시네마레터>와 <도모하는 힘>에 이어 세 번째 책이에요. 이번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일단 출판사의 제의가 있었어요. (웃음) 물론 저로서는 영화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고요. 그중에서도 영화가 주는 위로를 말하고 싶었어요. 살아가는 게 참 팍팍하잖아요.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영화의 힘을 믿는다는 쪽으로 대답했던 것 같아요. <땡큐 포 더 무비>는 그런 점에서 영화를 소재로 끌어낸 한 조각의 위로 혹은 우리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과 격려를 담은 거죠.

-<신영음>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12시는 사실 라디오를 수월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대가 아니니까요.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 같습니다. 영화음악이라는 소재를 떠나서 이 시간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가 필요하다, 라고 생각한 게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 이번 책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푹 빠져보면 헤어나올 수 없을걸요? (웃음) 이 시간에 라디오를 듣는 분들은 잠시 숨을 고르는 때를 원하시는 것 같아요. 시간을 살짝 늘리는 때라고 할까요. 오전 업무에 휩쓸리다가 잠시 속도를 늦추거나, 점심시간을 기다리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고, 주부들은 남편과 아이들을 내보내고 집안을 치우다가 자신을 위해 갖는 시간이겠죠. 저를 포함해 그런 분들에게 필요한 건 결국 서로가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에너지인 것 같아요. 선곡이나 소개하는 영화를 선택할 때, 사연을 고를 때도 그런 에너지를 생각해요.

-이 책에는 2012년 1월까지의 영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을 편집하는 동안 본 영화 가운데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이 영화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던 작품이 있을 것 같습니다. =<뱅뱅클럽>이라면 어떨까 싶어요. 어느 자리가 좋을지는 잘…. ‘고독’ 챕터라면 괜찮을 것 같네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는 ‘인정’에 넣어도 될 것 같고요. 사실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들은 많지만, 주제와 맞지 않으면 넣을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 영화들은 나중에 다른 형식, 다른 방식, 다른 주제로 엮어서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신영음>의 청취자 가운데에는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듣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평소 일상에서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 같아요. =아마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내향적이고 자아가 강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고 남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지 않을 거예요. (웃음)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신영음>으로 채우며 한곡 한곡 음미하는 분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신영음>은 1시간 동안 방송됩니다. 1시간의 묘미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 아나운서울러 그 1시간을 채우는 방식의 변화는 어떠했을까도 궁금합니다. =<신영음>은 영화음악으로 청취자와 공감하고 소통하는 시간이에요. 영화음악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화 이야기가 함께 들어가는 것이고 영화음악이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면서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거나 그 영화를 보던 시절과 어떤 사람, 혹은 그때의 마음을 같이 떠올리는 거죠.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상상이라는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 무언가를 상상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장식할 수 있는 것이 영화음악이에요. 그래서 <신영음>의 슬로건은 ‘좋은 영화음악을 널리 알려서 같이 듣자’는 것이고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에 따라 구성하고 있어요. 초기에는 매일 들어가는 코너의 시간이 길었어요. 15분 정도의 코너가 이야기와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지금보다 더 영화 같았죠. 하지만 지금은 한 코너가 2분 정도의 원고와 음악 한곡으로 6분쯤이에요. 예전보다 더 음악에 가깝죠. 그래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화나 음악에 대한 구구절절한 정보성 멘트보다는 영화 한편, 영화음악 한곡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만약 출판사에서 또 다른 제의를 한다면, 어떤 책을 써보고 싶으신가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참 많아요.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는 건 또 다른 일이겠죠. 영화에 대한 이야기 중에 책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거예요. <신영음>의 코너들은 방송으로 들으면 꽤 멋지고 좋지만 원고 한장만 들여다봤을 때는 책으로 엮기에 무리가 있죠. 만약 그 코너를 책으로 묶는다면 매일 쌓인 원고 365장이 메인이더라도 덧붙이고 곁들여지는 다른 이야기들이 있어야 할 거예요. 수년 전부터 친구와 생각만 하고 있는 게 있는데, 영화와 도시를 연결하거나 영화와 사진을 묶어보는 거죠. 영화 속 오브제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은데, 역시 궁리 중이에요. 제가 아끼고 할 말이 많은 영화 몇편을 뽑아서 그 영화를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식의 책을 쓰고 싶기도 해요. <토르: 천둥의 신>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면 북유럽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죠. <나넬 모차르트>라면 바로크, 로코코와 음악의 고전주의 사조, 바흐부터 얘기를 할 수 있겠고 당시를 살아간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영화음악을 진행한 15년 동안 청취자도 변했고, 영화도 변했습니다. 신지혜라는 개인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얼굴에 시간이 많이 붙었죠. (웃음) 내면적으로 본다면,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놓았어요. 예전에는 못 넘어가던 실수를, 그럴 수도 있지 뭐, 대세에 지장없어, 괜찮아, 하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겁은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삶이 녹록지 않다는 걸 더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외피적으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커가는 걸 바라보면서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어요. 아나운서로서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맡아 제작까지 하면서 많은 것을 얻고 소모하고 나누고 드러내는 와중에 두어개 영화제의 집행위원을 맡게 되고 책을 세권 낼 수 있었고 아나운서로서 받을 수 있는 큰 상을 두개나 받기도 했죠. 그만큼 감사할 거리가 많이 생겼어요.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시 한번 고르고 이후의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이어야겠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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