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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스트레~스!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이재하 캐릭터를 생각하다

<더킹 투하츠>

인생에 별 신통할 것 없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아 김이 샐 때, 애초의 시작점을 두고 허랑한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재벌은 부담스럽고…. 그저 때를 잘 만나 불린 재산을 자식대에서 홀랑 털어먹는 졸부의 둘째딸로 태어나면 좋지 않을까? 부모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의젓한 첫째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딸은 몹시 귀찮으니, 해외로 유학 가서 돌아오지 않는 둘째딸 정도로!’ 이같은 망상을 실천하고 살아오신 왕족이 있었으니. 대한민국에 입헌군주제를 되살린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왕제 이재하(이승기)다.

종로구 신궁동 1번지. 신궁에 기거하는 왕족은 조선왕조의 이씨 성을 잇되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바꾼 뒤 새로 건국해 갓 3대째를 맞았다. ‘영국처럼 왕실 땅이 있는 것도 일본처럼 하늘의 아들이라 떠받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세금으로 먹고사는 주제’라 국민의 이목과 내각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 이런 나라의 왕 이재강(이성민)은 “받은 만큼! 일한다!”를 왕족의 본분으로 삼고, 국민이 전쟁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며 세계장교대회(WOC)의 남북 단일팀 참가를 성사시켜 양국간의 긴장을 해소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받은 만큼 일하지 않는 동생, 군대 갔다 온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며 뺀질대는 재하에게 WOC 참가를 종용한다(또한 북쪽 온건파 실세의 딸이자 장교인 김항아(하지원)와 재하의 결혼도 추진한다).

어릴 때부터 왕이 될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고 혹여 형이 다쳐 왕 자리가 넘어오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던 재하는 ‘국민의 자존심과 판타지를 채워주는 마네킹 역할’을 자조하는 한편 또 몹시 즐기고 있는 인물이다. WOC로 내몰리기 전까지의 그는 앞서 떠들었던 망상-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유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책임과 의무는 두려운- 의 현신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사실 은수저 캐릭터는 재벌 3세가 유사 귀족처럼 등장하는 연애물에 널리고 널렸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사랑에 대한 결핍이나 트라우마는 연애감정을 매개하는 동시에 드라마 바깥, 동세대의 질시를 막아주는 가림막이 된다. 마치 그들이 가진 은수저는 결핍이나 트라우마의 대가인 것 같은 환각. 그들이 보통 사람을 만나 사랑하면서 풍족한 삶을 포기하는 과정이 엄청 매력적으로 그려지면(물론 재밌지만!) 문득 다시 시작점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우연히, 더 많이 가졌던 거잖아. 내려놓는 게,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더킹 투하츠>는 ‘조선시대가 아닌 21세기의 왕족’ 재하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이야기가 아니다(국민쪽에서 세금원조를 끊으면 끊었지…). 이 드라마는 형에게 후사가 생겨 부담을 털 날만 기다리던 그에게 책임과 의무를 떠안기고 원치 않는 긴장 속으로 그를 밀어넣는다. 남북 단일팀 장교들의 첫 만남 자리. 마치 협상 테이블 같기도 하고 미팅하러 나온 것 같기도 한 어색한 분위기에서 재하는 필요 이상으로 이죽거리며 북쪽 장교들을 도발한다. 그가 애국심과 반공정신이 투철한 인물이었나? 글쎄. 통일이고 뭐고 추호도 자신의 고민으로 삼고 싶지 않았던 인간이 맞닥뜨린 스트레스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보는 게 좋겠다. 훈련장 폭발사고를 간섭하러 온 미국과 중국 대표를 호쾌하게 조롱하는 것도 형의 등 뒤에 선 날라리 둘째여서 가능했던 이야기다. 형이 없는 세상의 그는 어떨까? 항아를 사랑하게 되면 또 어떨까? 아무튼 그에겐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가족도 명성도 재산도 모두 포기하겠소’식의 홀가분한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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