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3월21일) 새벽 4시45분에 시작하는 코파 이탈리아 4강 AC밀란 대 유벤투스 경기를 볼 생각이다. 어디서 중계하냐고? 안 한다. 극동의 작은 나라 한국에 사는 AC밀란의 팬들은 이 경기를 생생한 HD화질의 중계로 볼 수 없다. 심지어 AC밀란과 인테르가 격돌하는 밀란 더비를 해도 중계해주는 곳이 없으니 고작 코파 이탈리아 경기 따위 누가 신경이나 쓸까. 약간의 서러움을 토로해보자. 유럽 축구에서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도 간혹 중계를 해준다. 셀틱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성용, 차두리가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제발 세리에A에 누군가 진출해달라!
그렇다면 그 경기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네트워크의 시대 아닌가. 몇몇 해외의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국내의 아프리카TV 같은 그런 것들이다. 스웨덴 어딘가에 서버를 두고 있는 한 사이트에 접속하면 AC밀란과 유벤투스의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한글 해설은 없다. 그 방송화면은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아랍 어딘가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해외 방송사의 중계화면을 캡처해서 보여주기에 이탈리아, 독일어, 꽤 자주 아랍어, 운이 좋으면 영어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그래도 알아 듣는 건 많다. 선수 이름, 프리킥, 파울, 드로잉… 그리고 골!
문제는 이 스트리밍 서비스가 매우 불안하다는 점이다. 깨끗한 HD화면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버퍼링 없이 볼 수 있어야 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13인치 노트북 모니터에 눈을 박고 있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에 대한 보상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대체로 이렇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슛을 작렬하는 순간 버퍼링에 걸린다. 만약 공이 골대를 향해 날아가는 화면에서 골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으로 전환된다면 울화통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를 찾아 헤맨다. 경기도 봐야 하고 더 좋은 화질의 더 안정적인 중계 서비스를 찾아 눈과 손이 바삐 움직인다. 그러다가 또 골장면을 놓친다면? 생각하기 싫다. 경기가 끝나고 특히 무참히 패배하면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나는 왜 AC밀란을 좋아하게 된 걸까.
솔직히 AC밀란을 버릴까도 생각해봤다. AC밀란을 좋아하게 만든 카카와 피를로가 모두 팀을 떠났으니 올해가 팀을 갈아타기에 최적의 시간이었다. 맘 편하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면 지금까지 늘어놓은 고생은 단박에 해결된다. HD화면, 한국어 해설은 기본이다. 라운드별 각종 하이라이트 방송에 몇년 전 챔피언스리그 골 모음 같은 것도 볼 수 있다. 달콤한 유혹이고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끝내 팀을 버리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MB형님 베를루스코니가 구단주라는 사실도 애써 모르는 척하면서 응원했던 팀을 쉽게 바꾸지 못하겠다. 밀라노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안토니오 그람시 광장의 작은 공터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어째서 나는 밀라노 태생의 금발의 푸른 눈을 지닌 남자가 아닌 걸까. 만일 밀라노에서 태어났다면, 그랬다면 지난 12년 동안 우승 한번 하지 못한 꼴데를 응원하지도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