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4월29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3관 문의: 02-762-0010
성적비관 자살 기도, 단체 커닝, 시험지 유출 청탁. 치열한 입시경쟁을 둘러싼 뉴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명문 외고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 <모범생들>을 “진부해”라고 섣불리 단정짓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막이 오르면 무한 반복되던 소재는 우리에게 다시금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여기엔 당연하게도 연출과 배우의 힘이 기반한다.
연극 <모범생들>의 이야기는 화장실에서 시작한다. 검정 슈트를 쫙 빼입은 두 남자가 거울 앞에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서로를 의식하던 이들은 동창임을 알게 되고 인사를 나누지만 어딘지 가식적이다. 리미티드 만년필과 명품 지갑 등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뽐내기에 급급하다. 그들은 과거에 어떤 친구들이었을까. 이야기는 그들의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친아’를 연상케 하는 명문가 출신의 반장 민영, 상위 3%를 꿈꾸는 중산층 장남 명준, 제주도에서 올라온 눈치백단 넉살백단의 수환, 운동선수 출신의 졸부집 아들 종태. 그들은 이른바 ‘모범생’이라 불리는 명문 외고 3학년 학생들이다. 평소 성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압박감에 시달리던 명준과 수환은 커닝을 모의하고, 중간에 이를 알게 된 종태가 합세한다. 그러나 민영이 관리하던 출석부에서 시험지 유출을 청탁하는 돈봉투가 나오면서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단순하게 보면 철없는 고등학생들의 커닝 사건을 다루는 것 같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인간의 비뚤어진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학생들이 그들만의 사회에서 계급을 만들고, 인생이 이미 결정난 것처럼 승리자와 패배자를 나누는 모습이 오싹하다.
이 작품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이 독특하다. 연극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도 특징적인 무대세트나 미술이 없다. 팬터마임을 하듯 무에서 유를 창조해나간다. 이를테면 거울이 없는데 거울 앞에서 연기하는 장면이나, 협박과 폭력에 놓인 상황은 배우들이 일인극으로 소화한다. 또한 책걸상 4개만으로 고등학생의 일상과 이어지는 사건의 흐름을 다이내믹하게 조율한다. 최소한의 무대 세트로 다양한 상황과 극적 순간을 배치해가는 연출자의 능숙함이 돋보인다. 더불어 네명의 배우들이 연기한 각각의 캐릭터는 현실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모습을 냉정하게 보여주었다.
연극 <모범생들>은 ‘이런 게 바로 젊은 연극이구나’ 싶을 만큼 ‘모범’을 보여주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