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나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이의 영향을 받아 생겨나기도 하는데 나의 경우가 그러하다. 나의 취향은 순전히 ‘퍼펙트 샤인’(perfect shine)한 그의 취향에 맞춰졌다. 그에게 당신의 취향에 대해 조금 설명해달라 했더니 너무 긴 글이 왔다.
먼저 DP 익스트림 폼으로 거품을 만들어 먼지나 때를 불려 부드러운 양모 미트를 이용하여 전체를 닦아낸다. 이때 최대한 깨끗이 닦아야지 잔여물이 남게 되면 나중에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로 깨끗이 거품을 씻어내고 Ps21 클렌저로 유분도 제거한다. 톤이 어둡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푸어보이즈 블랙홀을, 밝은 톤이다 싶으면 화이트다이아몬드를 추천한다. 바를 때는 퍼프에 물을 살짝 적시고 손톱만큼 덜어내 펴 발라준 뒤 가볍게 극세사 타월로 닦아낸다. 이제 기본적인 것은 마쳤다. 꼼꼼한 마무리를 위한 다음 단계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카우나바 성분의 도도쥬스 슈퍼내추럴을 바르는 것인데….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는가? 그는 자신의 몸은 3분 만에 닦으면서 차 닦는 데는 3시간도 모자란 세차 마니아다. 도통 알아듣을 수 없는 약제들과 이해할 수 없는 물품들(플라스틱 광택제- 플라스틱도 광택이 나긴 해?, 타이어 광택제- 차라리 신발 밑창을 닦지 그래?), 종류별 스펀지와 극세사 타월들은 네 박스가 넘는다. 대체 왜 이렇게 많은 게 필요한지 물어보는 나에게 여자들이 화장하는 것과 똑같다는 눈높이 설명을 해줬다. 그래 뭐 우리도 아이크림, 영양크림, 수분크림, 핸드크림, 풋크림을 바르니까 이해해줘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오늘도 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그는 주섬주섬 세차 바구니를 챙긴다. 이젠 주차장에서 우리 차가 제일 깨끗한데 왜 또 세차를 하러 가느냐고 잔소리하지 않고 그냥 책 한권, CD 하나 챙겨 따라나간다. 세차장에 도착하면 그는 그의 취향대로 세차를 하고 나는 나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튼다. 밖에서 쏴아~ 하고 물을 뿌리면 꼭 비오는 날 같아 음악이 더 맛있게 들린다. 차 안이 주는 아늑함을 느끼며 그동안 인터넷과 텔레비전에 치여 읽지 못했던 책을 펴들고 있노라면 이런 시간도 꽤 즐겁다. 느긋하게 앉아 차닦느라 고군분투하는 그를 관찰하는 것까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젠 나도 타르 제거에 대해 물어보는 팀장에게 어느 브랜드가 좋다며 가격과 사용법까지 설명해주는 수준이 되었다. 운전면허조차 없는데 말이다. 가끔 남편의 유별난 취향에 대해 얘기하면 대체 차종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데 우리 차는 지금은 단종된 3년 된 국산차다. 아직도 가끔 주유하러 가면 “아이고~ 새 찬가 보네~”란 소리를 들으니 그의 취향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 덧붙이며 ‘퍼펙트 샤인’은 그의 세차동호회 이름이다. 이름 한번 기막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