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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아이콘] 라스푸틴의 예언
진중권(문화평론가)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2012-03-16

종교적 상상력과 민속적 상상력

러시아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다가 다시 ‘라스푸틴’과 마주쳤다. 이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러시아 혁명사를 읽을 때였다. 거의 3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이 비범한 인격이 주는 스산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 괴승은 기도로 혈우병에 걸린 황태자의 피를 멈추게 하는 영험함으로 알렉산드라 황후의 총애를 받았다. 황후를 통해 무능한 황제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그는 사실상 섭정을 통해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재촉했다.

인격의 언캐니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니, 몇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사진 속의 그는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다. 클로즈업한 얼굴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인격의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 깊은 늪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눈동자. 거기서 그의 비범한 능력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즉 일거에 사람들의 의지를 무력화시켜 제 숭배자로 만들어버리는 영적인 능력. 사진 속의 그가 주는 느낌은 ‘언캐니’에 가깝다. 과연 저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까?

또 한장의 사진은 자신을 숭배하는 귀부인들 사이에 앉아 있는 라스푸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인격의 비범함과 기도의 영험함으로 귀부인들을 매료시켰고, 당시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그의 매력에 넘어간 많은 여인들이 그의 넘치는 성적 욕망의 쉬운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사진 속의 라스푸틴의 눈은 특히 인상적이다. 정면으로 카메라를 쏘아보는 그의 휑한 눈은 그가 어딘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마지막은 살해당한 그의 사체 사진. 독이 든 과자를 먹여도 아무 증상을 보이지 않자, 경악한 유스포프 공작은 그에게 총을 쏘나, 총상을 입고도 그는 공작의 멱살을 잡았다고 한다. 결국 세발을 더 맞고 쓰러졌으나, 그때까지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결국 암살자들은 네바강의 얼음을 깨고 그를 강물에 던져버린다. 치명상은 이마에 맞은 총상이었다 하나, 검시 결과 그의 폐에선 다량의 물이 검출됐다. 익사했던 것이다. 그는 사람이었을까?

그리고리 라스푸틴(1869~1916)은 평범한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장과정에 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어린 시절에 남매 둘을 잃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도둑맞은 아버지의 말을 훔쳐간 범인을 알아맞히는 신통력을 보였다는 것 정도다. 18살 때 수도원으로 보내진 뒤, 성모의 환영을 보는 신비 체험을 통해 종교적 생활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 뒤 예언과 치유의 능력에 힘입어 시베리아 지방을 떠돌며 방랑 수도승으로 살았다고 한다.

알렉세이 황태자의 혈우병은 그에게 커다란 기회를 주었다. 의사들은 황태자가 오래 살 수 없다고 했지만 라스푸틴은 자신을 믿으면 황태자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며 황제와 황후를 안심시켰다. 실제로 그가 궁정에 들어온 이후 황태자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최면술로 고통을 경감한 게 치유를 도왔다고도 하고, 차라리 의사를 물리라고 한 게 황태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 자연치유를 도왔다고도 한다.

황후는 신이 그를 통해 자신들에게 말을 한다고 굳게 믿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라스푸틴은 황후에게 “신이 내게 말씀하기를 이번 전쟁은 황제가 직접 지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과는 파국적이었다. 심지어 라스푸틴은 모스크바에서 황후를 통해 전선의 황제에게 작전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폐하, 우리 친구가 밤에 계시를 받았는데 라트비아 지역을 공격해야 한답니다. 밀가루와 버터, 설탕을 실은 마차만 통과시키라고 명령내려야 한답니다.”

니콜라이 II세가 전선에서 특유의 무능으로 전쟁을 망치는 사이 모스크바의 정치는 고스란히 황후 알렉산드라와 라스푸틴의 손에 들어왔다. 결과는 파국적이었다. 1916년 어느 날 블라디미르 푸리쉬케비치 의원은 두마에서 연설을 한다. “차르의 장관들은 마리오네트가 되었고, 그 마리오네트의 끈은 라스푸틴과 황후 알렉산드라의 손이 쥐고 있다.” 이 연설을 들은 유스포프 공작은 푸리쉬케비치에게 라스푸틴 암살의 거사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라스푸틴 자신도 자신의 죽음과 왕조의 몰락을 예감했던 모양이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1월1일 이전에 죽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 농민의 손에 죽는다면 황제께서는 그 자리에서 계속 통치할 것이고, 귀족들의 손에 살해된다면 그들의 손은 제 피로 젖을 것이며, 그들은 러시아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저의 죽음을 가져온 사람이 황제의 친척이라면 황제의 자녀들과 친척들은 2년 내에 모두 죽을 것입니다.”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 그는 새해(“1월1일”)가 오기 전인 12월16일에 죽었고, 귀족들의 손에 살해당했다. 결국 그들은 나중에 혁명으로 인해 조국을 떠나야 했다. 비록 유스포프나 푸리쉬케비치가 황제와 인척 관계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예언대로 황제의 가족은 그가 죽은 지 2년이 안돼 볼셰비키의 손에 모두 처형당한다. 결국 제정 러시아는 이렇게 몰락의 시나리오조차도 괴승의 신학적 환상에 따랐던 셈이다.

정치신학

러시아라는 대제국이 신학적 환상에 빠지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널리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의 교회와 제국은 오랫동안 ‘일체’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 정교회는 서구 개신교에 비해 기복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런 신정일치의 분위기 속에서 실제로는 (정교회의 불신을 받던) 괴승이 졸지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20세기 초 러시아의 귀족사회는 이미 신비주의 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

라스푸틴의 신비한 이미지는 이 종교적 감성과 신비주의적 정서로 분칠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라스푸틴의 모습은 대부분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전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신비한 치유능력은 그저 신앙의 힘으로 정서를 안정시키는 심리치료에 불과했을 것이다. 독약이 든 과자를 먹고도 죽지 않은 것은 과자를 굽는 과정에서 독약 성분이 기화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총을 맞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 역시 흔히 있는 일이다.

라스푸틴의 숭배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그의 인격을 신성화했다면 라스푸틴의 반대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의 인격을 악마화했다. 가령 그의 반대자들은 그가 난교를 허용하는 이단종파의 추종자라 했으나, 최근 라스푸틴이 성적으로 방탕했다는 혐의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분명한 것은 라스푸틴은 신의 사자도 아니고, 사탄의 자식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광신적 기독교인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황후 알렉산드라는 독일 여인으로 원래 개신교의 배경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혈우병을 앓는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자신이 체험한 신비한 치유의 효과를 이성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독일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늘 ‘독일의 스파이’이라는 비난을 받아오던 차. 그녀로서는 기복적 성격의 정교회에 더 열성을 보이는 것이 그런 비난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떠돌이 수도승이 세계사적 의미씩이나 갖게 됐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라스푸틴의 이미지는 숭배자들의 ‘종교적 상상력’과 반대자들의 ‘민속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서유럽에서라면 그런 상상력은 중세에나 속했을 터. 하지만 당시 러시아 사회는 ‘근대 속의 중세’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