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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간 오빠가 돌아왔다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 수상한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

<가족의 나라>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필자가 <가족의 나라>(Our Homeland)에 주목한 것은 이 작품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이하 APM, 구 PPP)에 선보인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지난 APM 선정작 가운데 올해 베를린영화제에는 말레이시아 감독 에드윈의 <동물원에서 온 엽서>(Postcard from the Zoo)가 경쟁부문에, 재일동포 감독 양영희의 <가족의 나라>가 포럼부문에 올라 있었다. 양영희 감독은 이미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 두편의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보여준 적 있는데 <가족의 나라>는 앞선 작품들에 담지 않은 실화를 극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그녀는 <가족의 나라>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선 일부러 뺐다고 한다. “언젠가 이걸 극영화로 만들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란다. 오래전 <디어 평양>을 보면서 양영희 감독의 기구한 가족사에 연민을 느꼈지만 솔직히 <가족의 나라>에 대단한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미 다큐멘터리로 충분히 본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조금은 심드렁한 마음으로 화면을 응시했는데, 그러다 그만 훌쩍훌쩍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영화는 16살 때 북송됐던 양영희 감독의 오빠 성호가 가족과 재회하면서 시작된다. 뇌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3개월 체류 조건으로 일본으로 돌아온 성호는 25년 만에 부모님과 여동생을 만난다. 감시자(양익준)가 지켜보고 있기에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지만 오랜만에 자유를 느끼며 잊고 있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문제는 성호의 종양을 3개월 안에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는 성호의 체류 연장을 조국에 간청해보지만 당은 오히려 당장 이틀 안에 북한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25년 만의 만남, 자유와 생명을 향한 희망과 좌절, 이미 결혼한 첫사랑 그리고 다시 찾아온 절절한 이별, 이런 사건들이 이어지는 <가족의 나라>는 과묵한 성호가 건네는 몇 마디 대사로 심금을 파고든다. 3개월 안에 종양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걸 확인하고 성호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제가 16살 때 북한에 간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서”였다고. 조국을 위해 아들을 북에 보내야 한다고 믿었던 아버지는 이제 그의 조국이 사회주의 지상낙원이 아님을 알지만 평생을 의지한 신념을 버리지 못한다. 그저 아버지를 다치지 않게 하려는 착한 아들이 속죄양이 돼야 한다. 여동생은 그런 아버지를 비웃고 북한의 비상식적 처사를 이해할 수 없어 분노하지만 오빠는 그녀를 다독인다. “북한에선 생각을 하면 살아갈 수가 없어. 그래서 난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 하지만 넌 생각을 많이 해야 해. 나처럼 되지 않으려면.” 당장 내일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성호는 함께 도망가자는 첫사랑 그녀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너의 미소를 잃게 만들고 싶지 않아.”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밑바탕에 깔린 영화지만 <가족의 나라>는 거대한 이념을 말하는 영화는 아니다. 감히 왜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냐는 질문조차 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 영화는 이런 비극을 정치나 역사의 언어로 극화하는 대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에서도 오직 주위 사람을 염려하는 한 젊은이를 보여준다.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북한에 갔던 오빠는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북한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면 아마 이런 오빠가 있어서일 것이다. 첫 상영을 마치고 양영희 감독은 “바보 같다. 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울었다. 실제 있었던 일을 화면을 통해 보면서 모든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고 말했다. 감독만 그렇게 운 건 아니다. 필자를 포함해 객석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에 돌아온 뒤 이 영화가 베를린국제영화제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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