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이사올 때만 해도 올해는 원없이 공을 차보겠다 싶었다. 취재도 적극적으로, 기획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시사회도 적극적으로,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뭐든지 ‘적극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올해의 신조를 따라 평소 좋아하는 축구 역시 게임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즐겨보자는 생각이 컸다. 무엇보다 운 좋게도 유럽에서나 가능할 법한 집 앞 잔디구장이며, 혼수로 받은 메시 선수의 축구화며, 닿는 순간 발의 감촉이 부드러운 신제품 축구공(이것 역시 혼수로 받았다)이며 이런저런 조건도 ‘주말 축구인 김성훈’이 되기에 더없이 적합했다.
두달 전인가. 토요일 아침 8시에 일어나 FC바르셀로나 선수 코스프레를 한 채로 운동장에 나갔다가 내게 없는 결정적인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건 소속팀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바글바글한 운동장에는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아닌 오로지 두팀만이 있었다. ‘주말에는 지역 주민도 자유롭게 운동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학교 운동장 이용 수칙은 내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곤 골대 뒤에 있는, 아무 죄도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벽을 상대로 한 이미지 트레이닝뿐이었다. 이런 생활이 몇주째 계속되자 걱정이 된 아내는 “팀을 한번 구해보라. 아니면 저 아이들한테 끼워달라고 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한번은 아이들이 공차는 것을 그라운드 옆에서 관전했다. “형, 혼자면 저희랑 같이 차실래요?”라는 따뜻한 대사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거였다.
아이들에게 외면당한 지난주 주말. 새 팀을 만들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친구들? 학창 시절 때 팀을 꾸리려다가 한번 실패한 적이 있다. 회사 사람들? 문석 편집장은 얼마 전 다리를 다치셨고, 김도훈, 강병진 선배는 월드컵 때나 축구를 보는 것 같고, 정한석 선배는 집이 부천이고, 이영진 선배는 귀찮아할 것 같고, 주성철 선배는 한때 축구 오락은 꽤 한 것 같은데, 신두영 선배는 축구를 좋아하지만 좀 게으른 것 같고… 사진팀의 최성열, 백종헌 선배는? 내가 밀릴 것 같아 그건 안되고. 마음 같아선 만만한 후배 이후경과 남민영을 데리고 팀을 꾸려볼까 싶다가도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고. 조기축구회에서 뛰고 있다던 배우 혁권 형님한테 “나도 끼워달라”고 전화를 걸었더니 본인도 “안 나간 지 꽤 오래됐다”고 하더라.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아스날의 박주영 선수처럼 아침, 저녁으로 개인 훈련에 집중할 생각이다. 봄에는 어떤 팀이라도 상관없이 합류해 행복하게 녹색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다(혹시나 해서 제 신체조건을 밝힙니다. 키 180cm, 몸무게 75kg, 100m 기록은 15초대 주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