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은 미혼의 남자가 경성의 이곳저곳을 거닐다 친구를 만나 소설을 잘 쓰기로 다짐하며 새벽 2시에 귀가한다는,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얘기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는 지대하여, 그 뒤로 적어도 두명 이상의 문인이 그의 모티브를 차용한 것으로 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속의 인물 ‘구보씨’는 보들레르가 거의 현대성(modernity)의 상징으로 여겼던 만보객(flaneur)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파리와 경성의 만보객
이 작품이 만보객에 주목한 베냐민의 보들레르 연구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거의 동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 문단에서 수입한 보들레르의 얘기를 동경에서 접한 조선의 한 유학생이 이를 식민지 조선의 현대화를 기술하는 프레임으로 재도입한 것이리라. 스위스의 작가 로버트 발저가 최초의 만보객 문학(<산책>)을 발표한 게 1917년임을 고려할 때, 식민지 조선의 문학이 차라리 요즘보다 세계 문학의 흐름에 더 민감했던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파리와 경성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차이다. 당시 프랑스는 광대한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었고, 파리는 한 나라의 수도를 넘어 세계의 수도였다. 반면 조선은 어떤가?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경성은 파리와 같은 메트로폴리스에 비하면 변두리 중의 변두리에 불과했다. 이 엄청난 간극에도 불구하고 ‘현대성’이 던져준 충격(shock)과 중독(intoxicationm)은 파리와 경성의 거주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의 체험이었던 모양이다.
19세기에 파리의 댄디들은 거북이를 끌고 산책에 나서곤 했다. 거북이걸음으로 대도시를 걸음으로써 그들은 현대사회의 획일성과 속도감, 익명성을 비판하려 했다. 굳이 댄디가 아니어도 특별히 하는 일 없어 도시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배회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현대인의 일상이 되었다. 오늘날 만보객은 ‘윈도 쇼핑’만큼이나 의미없는 현상이 되어버렸지만, 보들레르가 살던 당시만 해도 거기에는 어떤 급진성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산보하는 식물학자
1848년의 혁명 이후 프랑스사회는 질서와 도덕으로 회귀하는 보수적 경향을 보였다. 문학과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특유의 예리한 시각으로 전통적 예술은 도저히 현대적 삶의 역동성과 복잡성을 파악할 수 없음을 간파했다. 그때 그가 새로운 예술가의 상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만보객’이었다. 산업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예술가들은 대도시에 몰입하여 “산보의 식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만보객을 “도시를 체험하기 위해 도시 속을 걷는 자”로 규정했다. 만보객은 구경을 하면서 동시에 구경을 당하는 자다. 구경을 한다는 것은 벌어지는 일에 개입하지 않는 소극적 태도를 의미한다. 하지만 스스로 도시의 풍경에 들어가는 것은 동시에 매우 적극적인 참여의 태도를 의미한다. 만보객은 제 자신이 도시의 일부가 되면서 동시에 거기에 거리를 취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보객은 한마디로 ‘참여자-관찰자’라 할 수 있다.
보들레르에게 ‘만보객’은 모더니티를 이해하는 키워드. 그는 만보객에게서 현대적 시인과 문인, 나아가 지식인의 모습을 본다. 현대적 지식인은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참여하지 않는 냉소적 관찰자다. 하지만 동시에 열정을 가지고 주제들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군중의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보들레르에게서 거북이를 끌고 메트로폴리스를 산책하는 댄디는 현대적 지식인의 은유가 된다(박태원의 소설에서 ‘구보씨’ 역시 소설가임을 기억하라).
사회경제적 조건
게오르크 짐멜은 정신적 태도로서 ‘만보객’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제시한다. 기능의 분화가 진행될수록 개인은 사회 속에서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를 독보적으로 만들어주는 그 조건이 외려 그를 (제 일을 제외한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더욱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만들어준다. 이 때문에 자신을 둘러싼 압도적 힘들로부터 자율성을 지키는 것이 현대인의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는 얘기다.
만보객은 실제로는 자신이 저 익명적인 군중의 일부이면서도 심리적으로는 그들의 냉정한 관찰자가 됨으로써 그들과 자신을 구별하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자-관찰자의 모순적 규정을 가진 만보객은, 짐멜이 지적한 것처럼 그 자체가 ‘현대인의 조건’(conditio humana moderna)인지도 모른다. 한때 만보객을 19세기의 지나간 현상으로 치부했던 발터 베냐민이 파리의 생활을 거치면서 이 현상에 다시 주목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거다.
‘만보객’의 등장으로 건축과 도시의 디자인은 이제 구경꾼까지 고려하게 된다. 베냐민이 파리의 아케이드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 때문일 거다. 아마도 베냐민 자신이 아케이드의 만보객이었을 거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지식인을 만보객에 비유하는 대목. “지식인은 만보객으로 시장에 들어왔다. 그들은 관찰을 한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실은 구매자를 찾기 위함이다. 이 과도기에 그들은 보헤미안의 형태를 취한다. 그들의 경제적 불확실성에 정치적 기능의 불확실성이 조응한다.”
군중 속의 고독
보들레르는 어디선가 이렇게 말했다. “군중은 만보객의 요소다. 그것은 공기가 새의 요소이고, 물이 물고기의 요소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의 열정은 군중과 하나의 몸이 되는 것이다. 완벽한 만보객에게, 이 열정적 관찰자에게 다중의 중간에, 운동의 밀물과 썰물의 한가운데에, 일시적인 것과 무한한 것의 한가운데에 집을 세우는 것은 그의 어마어마한 작업이다.” 군중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그들과 구별되는 것은 보들레르의 말처럼 “어마어마한 작업”이다.
최근 어느 팟캐스트 때문에 이른바 ‘좌파 지식인들’이 졸지에 ‘입진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비난을 하는 군중을 귀에 이어폰이나 꽂고 다니는 ‘귀진보’라 받아치기는 쉽다. 어려운 것은 도대체 이런 비난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의 성찰이다. 팟캐스트의 군중은 지식인을 향해 자신들과 완벽하게 한몸이 되라고 외친다. 그들은 지식인들을 향해 “너희들은 역사의 창조자가 아니라 구경꾼일 뿐”이라 비난한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보들레르가 지적한 것처럼, 사실 만보객으로서 지식인에게도 군중과 하나가 되려는 열망은 존재한다. 거리에서 군중과 하나가 되는 것은 심지어 중독(intoxication)이 될 만큼 황홀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보객에게는 또 하나의 욕망이 있다. 댄디의 정서든, 보헤미안의 정서든, 동시에 군중이라는 평준화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다. 2008년의 촛불집회를 통해 나는 뜨거운 참여와 차가운 관찰이라는 만보객의 이 모순적 규정을 몸으로 체험하고 글로 기록하기도 했다.
지금 군중이 지식인에게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차가운 관찰자의 측면이다. 자신을 이미 계몽된 존재로 여기는 군중은 공공연히 지식인들의 그런 정서를 “재수없다”고 말한다. 이 현상은 나에게 어려운 물음을 던진다. ‘만보객’이라는 모던의 지식인상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렇다고 지적 기회주의자가 되어 군중이 요구하는 대로 그들과 완벽히 한몸이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만보객을 대체할 새로운 지식인의 이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