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진, <철없는 여신>, 45.5×97cm, oil on canvas, 2011
기간: 2월5일까지 장소: 금산갤러리 문의: 02-3789-6317
동화책 편집자들이 이 그림을 본다면, 당장 수첩에 작가의 이름 석자를 새겨넣지 않을까. 동화를 모티브로 작업하는 구이진 작가의 그림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토끼의 얼굴과 새의 날개,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몸을 지닌 반인반수는 루이스 캐럴의 작품에서 툭 튀어나온 듯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을 오래 바라보게 되는 데에는 그 이상의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동화의 단골 캐릭터인 토끼, 새, 고양이가 화폭에 담긴 모습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무릎에 올려놓고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았던, 이유없이 사랑했던 그 동화책들을 다시금 떠올렸기 때문이다.
구이진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동화를 즐겨 읽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풀어내며 ‘텍스트를 그림으로 읽어내는’ 독서법에 매료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을 졸업하고 런던 캠버웰 예술학교에서 북아트를 전공한 이력답게, 구이진 작가의 그림은 스토리텔링이 강하다. 이번 개인전에서 소개될 <끝나지 않는 유년기>와 <철없는 여신>, <날지 않는 새들의 섬> 시리즈, <섬에서 버티기> 시리즈는 모두 안데르센의 동화 <빵을 밟은 소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예쁘지만 허영심 많은 소녀가 있다. 부잣집 마님에게 예쁜 구두를 선물받은 소녀는 구두를 보호하려고 가난한 사람이 먹을 빵을 징검다리 삼아 웅덩이를 건너려다 지옥으로 추락한다…. 안데르센의 이 아름답고도 비극적 2011인 동화로부터 구이진 작가는 “끝없는 유년기… 로부터 벗어날 줄 모르는, 자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읽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니컬하기보다 그 어리고 다치기 쉬운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은 따뜻함에 있다. “이 시대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분명히 이 시대에 대해서 말해주는 이야기들의 이야기. 평범(을 가장)한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가 읽어낸 동화와 현실의 연결고리를 그림에서 찾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