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물원을 샀다. 그냥 근심도 걱정도 많고 해서 정서 안정을 위해 사무실 내 자리에 7개 정도의 자그만 화분들을 두었다. 산 건 하나도 없고 다들 직접 씨앗을 뿌려 길렀거나 삽목(가지 등 일부를 잘라내어 발근, 발아시키는 방법) 혹은 물꽂이, 분갈이를 해서 새로 심은 것들이다. 수경재배가 가능한 싱고니움을 물컵에 기르고 있고, 집에서 무성하게 자란 테이블 야자를 분갈이해서 가져왔다. 가장 많은 건 산세비에리아인데 사무실 1, 2, 3층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직원들이 길러 웃자란 산세비에리아 줄기들을 마구 잘라와 삽목을 했다. 모 이사님 방에서 잘라온 벵골고무나무 줄기는 아무래도 겨울이어서 그런지 삽목에 실패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도둑질이지만 그렇게 무성한 가지들을 쳐줌으로써 사무실 미관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못 쓰는(?) 줄기들을 협조해준 임직원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영어로 땡큐, 중국어로 썌쎄.
싱고니움은 워낙 잘 자라는 아이들이라 그냥 적당히 잘라서 물에 넣어두기만 해도 잘 자란다. 겨울에는 가습효과도 있다. NASA가 선정한 공기정화식물 1위에 빛나는 아레카 야자의 사촌이랄 수 있는 테이블 야자는 흡연 독신남들이 집에서 키우면 좋다. 워낙 유명한 산세비에리아는 한달에 물을 한번만 줘도 좋을 정도로 ‘무관심’이 가장 좋은 재배관리법인데 그러다보니 사무실 곳곳에서 웃자라는 아이들이 많았다. 몇몇 테이블에 있는 산세비에리아는 천장에 닿을 정도로 자라고 있기에 슴풍 잘라서 숨통을 틔워줬다.
끝으로 나, 사무실에서 나팔꽃 기르는 남자다. 가장 애정을 가진 게 바로 사진 속의 나팔꽃이다. 그냥 화분이 아닌 나팔꽃을 사무실에서 기르는 게 말이 좀 안된다 싶었지만, 워낙 번식력이 좋은 나팔꽃은 그런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그냥 씨를 뿌림과 동시에 하루 만에 줄기가 솟아올랐다. 나무젓가락과 노끈을 이용해 잘만 하면 마구 줄기를 휘감아 나가면서, 봄쯤이면 거대한 식물 파티션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동시에 건너편 자리 김혜리 위원님의 정서 함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떤 동료들은 ‘타인의 취향’을 쓰기 위해 억지로 취향을 만들어낸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긴 했지만, 아니 이게 무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똑바로 가는 소리인가. 다들 안 어울린다고 얘기하지만 원래 나의 꿈은 요리사 혹은 정원사였다. 잘만 자라주면 남산한옥마을에 버금가는 충무로의 명소로 만들 생각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적상추에 도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