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한때 애니메이션계에 몸담은 적이 있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제목만 들어도 ‘아 그 작품, 실패작 아니었던가?’ 하는 반응이 쉽게 나오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서를 한 적이 있었던 것. 물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중 <이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을 제외하면 성공작이라고 불릴 만한 작품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그 실패가 그리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은 않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계를 떠난 이후로는 우리 애니메이션들이 개봉될 때마다 애써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다른 이유보다 관객동원 측면에서 실패할 것이 명백한 작품들이 연달아 나오는 상황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제작진들의 모습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원더풀 데이즈>와 함께 우리 애니메이션계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제작에 들어간 <마리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으로 남달랐다. 특히 박재동 화백의 <섬이야기> 제작이 계속 지연되면서 우리 애니메이션계에 전기를 마련해줄 작품을 애타게 찾던 상황에서 제작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런 기대는 비단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마리이야기>가 드디어 개봉했다. 이 칼럼의 성격상 작품에 대한 평을 하기도 그렇고 또 그럴 자격도 없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다만 <마리이야기>가 기존의 우리 애니메이션에서 부족했던 많은 부분들을 채워주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비록 그것이 완벽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제작진들이 박수를 받아 마땅한 수준은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사적인 오버는 이쯤에서 그만. 작품도 그렇지만 <마리이야기>는 국내영화 혹은 애니메이션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의 역사에도 한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우선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에서 파생된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인터넷의 특성에 걸맞게 활용한 면이 눈에 띈다. 홈페이지를 구성하는 콘텐츠와 그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작품의 성격에 아주 딱 맞아떨어지는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조화가 잘 드러난 부분은 바로 네비게이션과 메뉴인데, 이용자가 편안하게 방문해서 부담없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간단한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의적절하게 업데이트를 지속하고 게시판 질문에 즉시 답변을 올리는 성의있는 운영도 그런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마리이야기> 홈페이지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뻔한 영화 정보 콘텐츠에서 벗어나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Pre-Mari’라는 제목으로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들은 <마리이야기>가 아니면 선보일 수 없는 독특함이 묻어나온다. 지난해 12월20일부터 격일로 공개된 Pre-Mari 코너의 동영상들 중 첫 번째 이야기인 <또다른 상상>은 <마리이야기>의 Prequel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작품. 한 소녀가 내레이션으로 탐험가였던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느날 탐험에 나섰다가 어린 마리를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 작품은 약 1분짜리 애니메이션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또다른 상상>의 마지막편이 <마리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해준다는 사실. 따라서 아직 <마리이야기>를 보지 않았다면, <또다른 상상>을 먼저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을 듯하다.
두 번째 이야기인 <작은 여행>은 어린 시절의 마리가 역시 어린 시절의 날아다니는 개(이름은 몽이다)와 함께 환상의 숲 속에서 날아다니는 해파리들을 만나는 작은 이야기다. 두 캐릭터의 어릴 적 모습이 아주 색다르게 느껴진다. 한편 세 번째 이야기인 <O-28>은 제작진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 <마리이야기> 속 환상세계에 등장하는 녹색의 물고기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인데, <마리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설정으로 인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꼭 먼저 <마리이야기>를 극장에서 보며 물고기새들을 유심히 관찰한 뒤에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Pre-Mari 코너의 동영상들과 함께 <마리이야기> 홈페이지를 빛내고 있는 동영상은 멀티미디어 코너에 있는 제작 다큐멘터리다. 최근 케이블TV와 DVD를 통해 우리 영화들의 제작 다큐멘터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이렇게 홈페이지를 통해 제작 다큐멘터리를 공개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일주일에 3∼4일씩 작업실 한켠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며 좀더 사실적인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제작진들의 모습 등 실제 제작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 눈에 띈다.
이 밖에도 <마리이야기> 홈페이지에는 성시경의 팬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내 안의 그녀> 뮤직비디오와 <마리이야기> 주제곡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주요 장면들을 담은 하이라이트 등 다양한 동영상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 여하튼 이런 색다른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마리이야기> 홈페이지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우리 애니메이션 홈페이지보다도 뛰어나다고 평가받아 마땅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후에 만들어지는 우리 애니메이션들은 <마리이야기>의 홈페이지가 만들어놓은 이러한 전범을 뛰어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리스트chulmin@hipop.com
<마리이야기> 공식 홈페이지 http://www.mymari.com
<마리이야기> 카페 http://cafe.daum.net/beautifulM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