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1월 29일까지 장소: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문의: 1666-8662
배우가 이 연극을 “보지의 독백”이라고 소개하는 순간, 움찔했다. 배우들의 말마따나 눈은 눈이고 코는 코일 뿐인데, ‘보지’라는 말을 특별히 여길 게 무어란 말인가.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성 음부에 대한 언급의 조심스러움 또는 터부가 있다. 여성의 성에 대한 억압 이데올로기가 분명 잔존하고 있다. 연극은 이번에도 번역하지 않은 제목으로 막을 올렸다. “건물에 커다랗게 ‘보/지/의/독/백’ 하고 적혀 있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수군거리겠어요. 운전 중 현수막 보다가 사고 나면 큰일이잖아요.” 배우의 넋두리다. 이런 풍경이 10년차를 맞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여전히 유효하고 흥미로운 이유일 것이다.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되는 연극은 적나라하다. 음모, 교성 등에 대한 여성의 고민이 사연으로 나온다. 그러나 자극적이지도 천박하지도 않다. 수많은 여성들을 관찰하고 취재했다는 극작가 이브 엔슬러의 이야기 재구성은 탁월했다. 어색함은 불과 30분 만에 공감으로 이어진다. 무대 위 배우들은 직업적 배우나 캐릭터적 타인도 아니며 온전한 ‘나’도 아닌, 관객과 친구 혹은 자매애적 관계를 형성한다. 여성 스스로의 무지를 탓하지 않고 가만히 끌어안는다. 모놀로그와 리얼 토크 형식을 오가며 가장 친밀한 자세를 취하고 덕분에 관객은 부담스럽지 않다. 남성 전체를 가해자로 만들지 않는 것 또한 지혜다.
연극은 아직도 행해지고 있는 가정폭력과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조두순과 도가니 사건 등을 논한다. 그리고 숭고한 생명 탄생의 통로이자 까발려지고 찢겨지는 고통의 시간, 출산의 장소로 이동한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를 담은 시 <말하라>를 배우가 낭독할 때, 20년의 세월 동안 대답을 듣지 못한 할머니들의 물음에 가슴이 답답하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여성의 역사가 아니다. 사회와 인류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몸에 대해서도, 우리 몸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똑바로 바라보자. 강요된 편견이 깨지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