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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의 매혹 <데빌 인사이드>
2002-01-17

컴퓨터 게임

날아드는 스팸메일 중 ‘진짜 정말 확실히’ 화끈한 몰래카메라 홍보물이 적지 않다. 연예인말고도 보통 사람들의 몰래카메라 포르노도 많단다. 늘어진 배에 선명한 팬티 자국, 조잡한 사운드에 비가 오는 화질에도 장사가 되나보다. 몰래카메라물에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건, ‘전문’ 포르노필름에 돈을 치르는 것과 조금은 다른 이유에서다. 다른 사람의 일상생활을 훔쳐본다는 즐거움,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쾌감 때문에 근사한 몸매의 배우들이 숙달된 연기를 펼치는 전문 필름 대신 아마추어 몰래카메라를 선택한다. 옆집 수저가 몇개인지도 다 알고 살던 시절에도 관음증이란 게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생활이 공식적으로는 보호받는 지금, 관음증은 훨씬 더 집요하게 추구된다. 굳이 섹스장면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보고 싶다.

관음증의 끝은 어디일지 <데빌 인사이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이 게임은 하나의 쇼다. 사건 현장에 경찰이 출동해서 범인과 맞서는 것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형식이다. 외국에는 실제 이런 프로그램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말쑥한 차림새의 사회자는 현란한 말솜씨를 뽐내고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여성 보조 진행자들이 늘씬한 다리로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범인을 쫓는 모습이 긴박하게 펼쳐지고 틈틈이 쉬는 시간엔 무희들이 등장해 선정적인 춤을 보여준다. 현실의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라면, 경찰의 분주한 모습이 사건 해결과는 관계없는 해프닝일 뿐이라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데빌 인사이드>의 범인들은 사람이 아니라 좀비를 비롯한 괴물들이다. 그리고 이들과 싸워야 하는 건 경찰이 아니다. 경찰들이 잔뜩 출동해 시끄럽게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지만, 좀비의 날카로운 손톱과 맞서야 하는 건 쇼에 출연한 게스트들이다. 이들은 직업의식 투철한 카메라맨과 함께 건물 곳곳을 누비며 전투를 벌인다. 총이 있지만 마구잡이로 쏘아서는 안 된다. 총알 제한이 있어서 머리를 정확하게 겨누어야 총알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잘 싸우면 싸울수록 시청자의 반응이 좋다. 덤으로 ‘시청률표’처럼 생긴 총알도 얻을 수 있다.

시청자들은 물론 이쪽을 더 환영한다. 경찰이 우글우글 나와 다 쓸어버리는 것도 나름대로 통쾌하기야 하겠지만 언제라도 좀비에게 물어뜯겨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의 게스트쪽이 훨씬 스릴 있다. 생생한 공포와 죽음은 강한 중독성을 가져오고 이는 시청률 상승으로 곧장 이어진다. 게스트 입장으로 말하자면, 그냥 멍하니 앉아서 미소짓고 가끔 농담이라도 던지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 낫다. 그래야 다른 프로에도 또 출연할 것 아닌가.

클라이맥스는 게스트가 죽는 장면이다. 생명 게이지가 다 떨어지면 쓰러진다. 그런데 다른 게임과 달리 금세 죽는 것이 아니라 경련을 일으키며 버둥거린다. 사회자는 공허한 눈으로 푸드덕거리는 게스트의 이름을 열심히 부른다. “어이, 안 일어나? 어서 일어나라구!” 계속 떠들어대지만 바닥의 시체는 아무 대답이 없다. 그러다 경쾌한 말투가 다시 이어진다. “쇼는 계속됩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게스트, 다음주를 기대하시기를!” 다시 무희들이 등장해 화려한 춤이 펼쳐지고 쇼는 끝난다.

<데빌 인사이드>는 게임일 뿐이다. 현실에선 이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신의 욕망 속에서는? 다른 사람의 삶을 마음대로 훔쳐볼 기회를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을까? 박상우/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