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취임식에서 정명훈은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합창> <환희의 송가> 앞부분과 독창이 등장하는 부분을 짜깁기해서 지휘를 했다. (…) 정명훈은 음악을 지휘하던 지휘봉을 이명박에게 활짝 웃음 띤 얼굴로 선물한다. 이튿날 대형 기득권 보수참칭(僭稱) 종이신문들은 일제히 ‘대한민국을 잘 지휘하라는 의미로 지휘봉을 준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명박의 부역자
김상수라는 이름의 연출가가 여러 진보매체를 오가며 집요하게 지휘자 정명훈을 물고 늘어졌다. 정명훈은 세계적 지휘자가 아닌데 과도한 연봉을 받았다는 것이다. 무지로 점철된 그의 글은 이미 여러 클래식 애호가들의 반박을 받아 한갓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으니, 그 얘기를 굳이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은 문제는 그가 정명훈을 물고 늘어지던 그 ‘정치적’ 방식의 고약함에 대한 지적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치 독일 치하에서 히틀러의 생일 전야제 공연으로 ‘위대한 독일민족의 지도자 히틀러’를 찬양하기 위해 동원된 푸르트뱅글러의 <환희의 노래>와 정명훈이 이명박 취임식에서 지휘한 <환희의 송가>는 어떤 차별성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을까?” 이로써 정명훈은 졸지에 푸르트뱅글러와 같은 나치 부역자가 된다. 이명박이 히틀러처럼 전쟁을 일으켰나, 유대인을 학살했나, 아니면 헌정을 파괴했나?
이렇게 그는 정명훈을 졸지에 이명박의 부역자로 둔갑시킨다. 그런데 그가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정명훈은 이례적으로 시향의 연주를 중단하고 관객과 함께 서거한 분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심지어 언젠가 김대중 국민회의 대표가 신당을 창당할 때 거기에 이름을 올려놓기까지 했다. 우익의 김상수라면 이를 두고 정명훈은 전라도 빨갱이 정권의 하수인이라 부르지 않을까?
몇년 전에도 사건이 있었다. 문화부에서 국립 100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려 했을 때, 파리에 사는 진보신당 당원 목수정이 마침 파리에 와 있던 정명훈에게 지지를 부탁하러 찾아갔다. 나는 이 계획에 찬성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향에서 일하는 누이를 통해 ‘마에스트로’를 만나는 절차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누이도 웬만한 일은 비서를 통해 처리하고, 꼭 만나야 할 경우 미리 약속을 정해 휴식시간에 잠깐씩 본단다.
서명이 필요하면 용지를 비서에게 맡기고 돌아가면 될 일. 하지만 그들은 “기왕 온 김에 단 3분이라도 그에게 우리의 육성으로 절박한 현실을 전하고 그의 예술가적 양심에 호소하고 싶었기에”, 정명훈이 중요한 식사모임을 갖는 호텔로 찾아가서는 “돈 많은 현대의 귀족들의 충실한 심복 같은 그들”(호텔 직원)의 ‘나가달라’는 요청도 거절한 채 기다렸다가 그와 직접 대면을 했단다. 때는 새벽 1시. 당연히 좋은 소리를 들을 리 없는 상황.
결국 그녀는 마에스트로에게 당연히 험한 얘기만 듣고 만다.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 돕고 싶으면 저기 아프리카나 가서 도와줘요. 여기서 그러지 말고.” “도대체 정신을 좀 차리세요. 공부 좀 하란 말이야. 세상이 그런 게 아니야. 이 계집애들이 말야. 한밤중에 찾아와서.” “기도하라구. 기도.” 이에 분개한 그녀는 “그에 대한 무한한 경멸”을 담은 눈빛으로 이렇게 쏘아붙였다고 한다. “당신이나 정신 차리세요.”
순수-참여 논쟁
이 해프닝에서 그녀가 끌어낸 결론. “이로써 그동안 어떻게 저 고매한 예술가가 이명박과 손발이 맞아 수년간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한방에 해결되었다.” 정명훈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인간적으로 거만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걸로는 성이 차지 않았나? 기어이 그를 이명박으로 만들어놓는다. “그 사고의 경박함은 이명박, 유인촌과 그가 한치의 차이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오페라합창단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해야 할까? 그러자 목수정은 이렇게 대꾸한다. “우린 왜 그럼, 친일 인명사전을 편찬하며, 거기에 홍난파니, 서정주니 하는 이름을 끼워넣은 건가? 예술가들은 영혼이 없이, 기예만 뛰어나면 된다니? 그들은 좌로 가든 우로 가든 자유로운 영혼들이니 아무 데나 가서 줄서서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놔둬라?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한 논리다.”
그녀가 그 “논리”를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했다면 그것은 무식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듣고 본 유일한 논리는 80년대 운동권에서나 통용되던 1930년대의 ‘순수-참여’ 논쟁이리라. 하지만 현대미학에서 예술을 정치와 연결하는 연구는 보기 드물게 되었으며, 간혹 있다 하더라도 그 관계를 그렇게 무식하게 따지고 들지는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시대착오, 즉 ‘좌파’ 미학의 문화지체 현상이다.
이 대목에서 박노자 선생이 등장한다. “그런데 지금 (…) 귀족화된 예술인 정명훈을 옹호하는 진중권을, 그 누구도 죽이려 하지 않지 않습니까?” 정명훈 옹호했다가 죽임까지 당할 판이다. 세계적 예술가들은 정명훈만큼은 “귀족화”됐을 텐데, 그들을 다 몰아내야 할까? 이건 거의 프롤렛쿨트 수준. 그토록 급진적인 트로츠키가 왜 10월 혁명 직후에 ‘지금은 부르주아 문화의 정수를 보존할 때’라고 말했는지 이해가 된다.
<나는 꼼수다> 콘서트 기획자 탁현민의 예술인식을 보자. “정명훈의 예술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의 예술이 세종문화회관을 지나는 저 종종걸음의 대중에게 있지 않음은 나는 알겠다. 마에스트로는 무슨 개뿔. 대체, 고작해야 한시절 서유럽에서 유행했던 음악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조낸 참담한 음악교육. 그렇다면 그 시절 아프리카 가나나 짐바브웨에서 불렸던 음악도 클래식이라고 해야지. 씨바.”
한국 ‘진보’의 예술에 대한 인식이 어쩌다가 이렇게 처참해졌을까? 그렇게 치열하던 80년대에도 이 정도로 참담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스탈린도, 히틀러도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 대접하지는 않았다. 현대음악은 탄압했을지 몰라도, 그들도 클래식만은 키워서 체제선전과 대중교양에 써먹으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명훈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한국 진보의 예술관은 스탈린이나 히틀러 수준도 못되고, 그냥 폴 포츠 수준이다.
예술가의 자유
목수정은 이렇게 말했던가? “예술가들은 영혼이 없이, 기예만 뛰어나면 된다니? 그들은 좌로 가든 우로 가든 자유로운 영혼들이니 아무 데나 가서 줄서서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놔둬라?” 정명훈이 평양 가서 그곳의 교향악단과 협연을 했단다. 재미있게도 “영혼이 없이 기예만 뛰어난” 것은 정작 북한 음악의 특성. 이는 물론 예술적 가치 위에 정치적 효과를 올려놓는 그 잘난 사회주의 미학의 결과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악단의 기예(연주)에 지휘자의 해석(영혼)이 들어가면서 그들의 음악은 놀랄 만큼 좋아졌단다. 연주를 마친 뒤 정명훈이 예의 싹수없는 말투로 북한 지휘자에게 말하기를,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유야, 자유!” 그라고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 효과를 방금 직접 눈으로 지켜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정명훈이 방을 떠나자 그 지휘자,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터뜨리며 울었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한다. 어설픈 이념으로 그들을 괴롭히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