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y McBeal NTV 월∼목 오후 9시, 재방송 새벽 1시
‘극심한 빈부격차에 걸맞게 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보스턴. 사건·사고 많은 보스턴에 걸맞게 늘 사건·사고를 치고 다니는 변호사 집단이 있었으니. 바로 케이지 앤 피쉬 법률회사 직원들이었습니다.’ <보스턴 저스티스>의 쌍둥이 시리즈, <앨리의 사랑만들기>는 참으로 재미있다. 실력은 끝내주는 변호사면서도 사생활에서는 늘 실수연발에 애정문제로 애간장만 태우는 변호사 앨리 맥빌. 그 앨리를 둘러싼 사람들의 괴이할 정도의 폭소연발 코미디가 <앨리의 사랑만들기>다.
<시카고 호프> <보스턴 저스티스>의 제작자 데이비드 켈리가 만들어낸 앨리와 친구들은 그야말로 혼자 보기엔 아까운 사람들이다. 남자만 보면 입이 헤벌쭉 벌어지는 앨리, 온갖 괴벽은 다 가진 리처드와 ‘비스켓’ 존, 온갖 말썽에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비서 엘레인, 어쩌다 얽혀든 앨리의 옛사랑 빌리와 아내 조지아 등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난리통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건들, 사람들은 깜찍하고 깨물어주고 싶게 사랑스럽다.
괜찮은 남자만 보면 턱이 바닥에(진짜로) 떨어지고 야시시한 상상만 해대며, 찔릴 때는 졸아들어 의자 밑으로 기어들면서도 소송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앨리,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회적 자아와는 별개인 인간적인 자아가 너무나 독특해서 아끼고 보듬어주고 싶다. <앨리의 사랑만들기>는 다 큰 어른들을 가지고 유치함을 발산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어려운 법률 공부해서 회사까지 차릴 정도로 나이를 먹었으면서, 나이와는 상관없는 자기만족의 해결방식을 추구하는 주인공들, 그 주인공들을 통해서 시청자들까지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아무리 유치만발에 괴벽스러운 행동을 해도, 그 본성은 빛나는 것이다.
시즌 1이 앨리를 중심으로 했다면, 시즌 2부터 넬과 링이 등장하며 <앨리의 사랑만들기>는 ‘막강 사랑스러운 사이코 군단의 앙상블’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한다. 앨리의 개인기에서 케이지 앤 피쉬 회사의 팀워크 플레이로 이전하며 좀더 너른 마음의 판타지가 되려는 시도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일부 캐릭터의 깊이를 보여주느라 다른 캐릭터를 잡아먹어버렸다는 것이다. 게임만이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PK(Player Killing)가 존재했던 것이다.
<앨리의 사랑만들기>의 치명적 약점은, 팀워크를 그렇게 중요시하면서도 일부 캐릭터에만 과도한 애정과 합리화를 일삼는다는 점이다. 남자인 존이나 리처드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건 인간적 약점이 되고, 여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나쁜 년이거나 본래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느닷없이 성격 파탄으로 몰고 가고 만다. 그런 폭력 속에서 꽃피는 순수함과 판타지의 향연이라니! 아무리 이야기가 재미있어도(사실 매회 에피소드는 정말 재미있다) 불편하기 그지없다. 배우들간의 환상적인 코믹 성격화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앨리의 유치함이 도를 넘어 정신착란으로 넘어가면 아무리 막강한 판타지도 사이코 드라마로 전도되고 만다. 똑같이 애들스러운 환상이어도 대인관계에 방해가 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유치함과 정신착란으로 갈리는 법이다.
어린이적인 것의 즐거움은 솔직함에서 오지 순수성에서 오지 않는다. 솔직하기에, 어린이적인 것의 폭력성을 오히려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앨리의 사랑만들기>는 ‘어린이적인 것=순수성’이라는 편협한 공식을 남자들에게만 적용함으로써, 그 폭력성을 어설프게 감춘다. 그래서 존의 유치함이 아니라 강박관념의 폭력성에 염증을 낸 넬의 결별선언은 단지 ‘엘리트주의에 물든 여자가 순수한 남자를 걷어차는 것’으로 전도되고 만다. <사브리나>나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의 어린애성과 사회부적응이 정당성을 지니는 것은 솔직함이 말 그대로 솔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앨리의 사랑만들기>는 사회부적응성을 순진함으로 주장하려다보니 어린이적인 것이 지닌 폭력성을 감춰버리고 만다. 기만의 극치다. 기만의 가면을 쓰고 판타지의 즐거움과 감동을 전파하는 <앨리의 사랑만들기>는 사실 일찍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해서 시즌 3에 들어서면 죽어가는 사람이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것까지 웃음으로 전도하는 중증으로 발전한다.
다행히, 시즌 4에 혜성 같이 등장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드라마의 분위기를 살려주었고, 판타지에 근본적인 따뜻함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악운이었을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본인이 마약문제로 체포되는, 환상을 산산이 깨버리는 사건이 발생했고 앨리는 새로운 남자를 찾아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제가인 <내 영혼을 찾아서>(Searching My Soul)의 영혼이 단지 이 남자 저 남자가 아니라는 것은 드라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알았다. 이제 5년차를 맞는 앨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그 사실을 제발 잊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이 여전히 아낄 수밖에 없는 앨리에게 보낼 수 있는 내 최대한의 사랑이다. 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