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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식] “동반성장 발로 뛰겠소"
문석 강병진 사진 오계옥 2012-01-06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2012년은 급변하는 최근 정치환경에서도 유난히 큰 변화가 일어날 해이다. 4월11일 국회의원 선거와 12월19일 대통령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지는 정치의 해이기 때문이다. 영화계 또한 이러한 정치의 회오리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영화에 대한 정책이 실패라기보다 전무(全無)에 더 가까웠던 탓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기도 하고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변화에 대한 요구가 분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를 포함한 문화 정책의 수장인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의지는 중요해 보인다. 표류하고 있는 영화정책을 바로잡아야 하고 혼탁한 시장환경 또한 개선해야 하는 임무가 그에게 부여된 까닭이다. 올 9월17일 취임한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최광식 장관을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에서 만났다. 고대사를 전공한 이력으로 인해 고루한 성격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지만 그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연극까지 두루 관심을 갖는 ‘멀티문화인’이었다. 게다가 영화업을 했던 외삼촌을 뒀고 대학 시절에 연극까지 했다니, 그가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유를 알겠다.

-요즘 바쁘시죠. =그렇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살펴야 할 게 많다보니까요. 콘텐츠나 미디어도 있고, 어느 날은 체육행사 갔다가 종교행사를 가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화부 장관을 하려면 우선 건강해야 하는 거 같아요. (웃음) 9월17일 취임했으니까 12월25일이 딱 10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국정감사로 업무를 시작해서 10월, 11월에는 문화와 관련된 행사가 많았고 12월이 되니까 예술, 콘텐츠, 영화, 패션 분야의 시상식도 계속 열리고 있어서 바쁘네요.

-그동안 영화계 인사들은 많이 만나셨습니까. =취임한 지 한달쯤 됐을 때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가 출범했어요. 제작, 투자배급, 극장, 감독, 노조 등 정말 여러 분을 만났습니다. 나중에 따져보니 23개 단체더라고요. 사실 영화계와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외삼촌이 과거 충무로에서 영화제작을 하셨어요. 동양극장에 근무하시다가 권투 프로모터로 돈을 많이 버셔서 그걸 영화에 투자하셨죠. 그런데 3편 정도 만들고는 그만두셨어요. 그 덕분에 어렸을 때 배우들을 많이 뵙기도 했죠. (웃음)

-영화계 분들과 만나신 결과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이라고 판단하십니까. =아무래도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입니다. 현 정부의 중점 과제이기도 하고 영화계의 중론이기도 합니다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또는 상생협력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이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입니다.

-동반성장협의회에 대한 장관님의 원칙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를 위한 제도로 대표적인 것이 표준계약서입니다. 투자, 근로, 상영과 관련한 표준계약서가 있는데, 우선 영화투자표준계약서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표준약관 심사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공정위에서 승인이 나면 그 취지에 위배되는 계약에 공정위가 개입할 수 있게 됩니다. 영화근로표준계약서는 영진위가 지원하는 영화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채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2012년부터 영화발전기금 출자 펀드가 투자하는 영화가 이 계약서를 채택하면 투자 심사에서 가산점을 줄 계획입니다. 영화상영표준계약서와 관련해서는 부율, 개봉일, 개봉기간 등 사안을 동반성장협의회에서 논의 중입니다.

-표준계약서가 마련되어도 강제하는 조치가 없다면 대기업이 따라와줄까 의문입니다. =일단 자율에 맡기는 게 가장 좋다고 봅니다. 대기업도 어느 정도는 문제의식을 공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계의 의견이나 바깥 여론이 있으니까요. 장기적으로는 대기업도 중소기업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더 큰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계가 발전해서 시장이 더 커지면 대기업한테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일반 관객이 체감하기로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를 제한받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일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특정 영화의 스크린 수를 제한하는 등 제도적 장치는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상영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예술영화 쿼터제나 영화당 스크린 수 제한 같은 여러 대안들이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스크린 독과점을 법과 제도로 제한하는 것은 장기과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단기과제는 표준상영계약서입니다. 이것이 정착되면 한 영화가 700~800개씩 스크린을 잡고 다른 영화들이 단기 종영되는 부분을 막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동반성장협의회의 결론이 어떻게 도출되느냐가 관건입니다. 현재로서는 슬라이딩 부율제를 권고안으로 두고 있습니다. 상영기간이 길어질수록 부율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배급과 상영 양쪽 모두에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것입니다.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의 폐해와 관련해서 투자배급과 상영을 분리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1940년대 미국에서 파라 마운트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 판결로 미국에서 투자배급업자는 상영업을 동시에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영화산업의 구조와 현재 한국의 상황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 또한 현재는 사전적?구조적 규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현 시점에서는 동반성장협의회의 논의를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투자배급과 상영을 분리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는 가장 강력한 규제 정책이므로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협력해서 적극 대처할 것입니다.

-일부 대기업은 제작업까지 손대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사를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동반성장협의회 산하 ‘기반조성 분과 실무추진위원회’에서 주요 안건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영화계 일각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동반성장위원회’에 영화제작업, 영화후반작업 관련 업종 등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수직계열화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이 제도만으로는 수직계열화를 해결할 수 없어서 계속 논의 중입니다.

-영화계의 현안에 관해서 동반성장협의회의 논의를 우선에 두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문화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가장 좋은 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잘 안될 경우에는 우리가 법적?제도적인 토대를 마련해야죠.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시장 진입을 금지하는 법을 만든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동반성장협의회에서 문화부의 역할을 굳이 설명하자면 일종의 코디네이터입니다. 논의의 방향을 정하고 의견을 조정한다는 측면에서 말이죠.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 좋은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현재 한-미 FTA가 국회를 통과해 대통령의 서명까지 끝난 상태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했고 문화다양성협약 논의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한-미 FTA가 문화다양성협약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문화다양성협약은 세계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제협약으로 제20조 1항과 2항에서 다른 협약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1항에서는 ‘다른 협약과 충돌할 때 상충하지 않도록 해석한다’고 규정하고, 2항에서는 ‘다른 협약상의 권리?의무를 해치지 않는다’고 해서 1항을 지지하는 유럽연합, 캐나다, 중국, 인도 등의 입장과 2항을 지지하는 미국, 일본의 입장을 두루 반영한 셈이죠. 따라서 제20조 2항에 의하면 한-미 FTA와 문화다양성협약은 충돌하거나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한 제도로 대표적인 것이 표준계약서이다. 투자, 근로, 상영과 관련한 표준계약서가 있다. 부율, 개봉일, 개봉기간 등 사안을 동반성장협의회에서 지금 논의 중이다.

-2007년 정부는 FTA 협상을 시작하면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했고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영화발전기금을 신설했습니다. 한데 한국영화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제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영화발전기금은 언젠가부터 정부의 영화 관련 예산을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영화제 등 주요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이 국고 일반예산을 통해 이루어져 오다가 2011년부터 영화발전기금에서 지원되고 있는 점에 대해 영화계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12년에도 해당 예산을 다시 일반회계로 편성, 요청했지만 재정당국과의 이견으로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우리 부 차원에서도 국고 일반회계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재정당국과 국회가 영화발전기금에서 우선 편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 어려움이 있네요. 다만 모태펀드의 문화 계정 투자조합의 경우, 2007년부터 2011년 11월까지 영화부문 투자액이 1639억원 정도 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스토리지원 및 CG 프로젝트 제작지원 사업 등을 통해 연간 60억원 이상이 영화산업 부문에 간접적으로 지원되고 있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막대한 예산을 배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사업 중에는 애니메이션이나 콘텐츠의 해외 진출 부문 등 영화진흥위원회가 맡는 게 나을 듯 보이는 사업들이 있습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진흥의 경우, 영진위의 역할이 일정 부분 강화될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2012년에는 국고 일반예산 10억원 규모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개봉지원 사업을 영진위를 통해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하지만 영진위와 한국콘텐츠진흥원 기능의 전면적 재조정에 대해서는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영화계의 오랜 숙제인 부율문제도 궁금합니다. 할리우드영화는 극장 부금이 매출액의 60%인 데 비해 한국영화는 현재까지도 50%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영화에 대해 다른 부율을 적용해온 데는 극장쪽이 스크린쿼터를 경제적 규제로 인식해왔던 탓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스크린쿼터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영화에 대한 부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 같습니다. 사실 표준상영계약서에도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는데 동반성장협의회에서 이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문화부에서도 대기업 계열 극장들이 솔선해서 한국영화 부율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줄 것을 적극 요청할 것입니다.

-한국영화의 수익성이 낮은 데는 부가판권 매출이 매우 적다는 영향도 있습니다. 이는 대다수 불법 다운로드 때문입니다.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침체된 부가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불법다운로드 근절이 필수 선행요건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굿다운로더 캠페인’과 함께 2011년 11월부터 시행된 웹하드 등록제와 연계하여 영진위의 불법 콘텐츠 유통에 대한 감시기능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온라인 불법유통의 효과적인 단속을 위해 올해부터 영화 특징점(Hash 및 DNA) 구축 사업도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독립영화계도 파행을 겪는 등 문제가 많습니다. =독립영화는 한국영화 창작인프라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독립영화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추진해온 독립영화제작지원 사업 및 현물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현재 3개 독립영화전용관이 있는데 각계의 의견을 반영해서 운영을 개선할 계획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온라인 시장이라고 봅니다. 독립영화 온라인 유통을 앞서 말했던 부가판권 활성화 방안과 연계 추진해 독립영화계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총예산 대비 문화 분야 비율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낮은 1%대로 알고 있습니다. =OECD 평균은 2.2%인데 한국의 경우 2011년에는 1.1%였으니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새해에는 1.3%까지 올리는 것이 문화부의 목표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일단 늘어난다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문화 예산 증액은 청년실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문화콘텐츠나 관광 분야는 청년층이 선호하는 직업이니까요. 청년실업자가 33만명에 이른다는데 이 분야에 예산이 집중투입되면 좀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각국의 생활환경과 삶의 질을 측정해 발표한 ‘행복지수’(The Better Life Index)를 보면 우리나라는 34개국 중 26위였습니다.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화부 예산을 확충해서 국민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K-POP 열기가 대단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영화를 포함한 다른 문화 분야로 전이시키기 위한 문화부의 방안은 어떤 것입니까. =K-POP은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뿐 아니라 문학까지 해외에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몇몇 스타로 시작된 한류붐을 타고 드라마가 건너갔지 않습니까. <겨울연가>는 일본으로 갔고, <대장금>은 중동과 동남아지역까지 갔잖아요. <뿌리 깊은 나무>는 아마 최초로 아시아 지역 너머까지 나가는 한류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문화부는 각국에서 한류를 사랑하는 서포터즈와 연계해 붐을 확산하는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그리고 재외 한국문화원 수도 늘리고 인프라도 키울 계획입니다.

-장관께서는 고대사를 전공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역사드라마에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사실 드라마 <주몽>을 제안한 게 저였습니다. 고대의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알려졌으면 해서 임권택 감독님을 만나 제안을 드렸더니 임 감독께서는 예산이 400억원은 들 거라며 먼저 드라마로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주몽>이 만들어졌고 이후 <연개소문> <대조영> <광개토태왕>까지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의 줄기를 따르기보다는 상상력에 더 많이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복식 같은 것도 더 고증이 필요할 것 같고요. 아무튼 무궁무진한 분야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미래콘텐츠포럼에 제가 역사, 철학을 연구하는 인문학자들을 포함시킨 것도 그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IT업계에서 만드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인문학자들에게 자문 정도를 구하고 만들어진 건데, 앞으로는 처음부터 공동작업을 할 필요성이 있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해는 <최종병기 활>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다문화 가정에 관해 이야기한 <완득이>도 재밌게 봤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워낙 완성도가 높기도 하지만 그 안에 어떤 한국적인 정서가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도가니>도 빼놓을 수 없죠. 영화가 가진 사회적 힘을 보여준 경우였으니까요. 내 인생의 영화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젊은 날 봤던 <쿼바디스>인 것 같아요. 그 안에 야망과 사랑과 감동… 모든 게 들어 있잖아요. 이 영화는 제 마음속에서 잊혀지질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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