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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무대와 생방송, ‘라이브’에 목숨 걸었다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1-12-23

연극 <리턴 투 햄릿>과 라이브쇼 <SNL 코리아> 연출 맡은 장진 감독

섭섭했다. “<씨네21>과 인터뷰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농담이, “무대가 나의 시작이고 끝이다”라는 확고한 말이. 그러나 <로맨틱 헤븐> 이후 영화 현장을 떠나 연극 무대와 라이브쇼 세트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장진 감독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활력 넘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2월9일 개막한 기획 연극 시리즈 <연극열전4>의 첫 작품이자 장진 감독이 4년 만에 대학로 무대에 연출자로 복귀한 <리턴 투 햄릿>은 무대 뒤 연극배우들의 실제 모습과 애환을 그린 연극이다. 2회 방영을 마치기가 무섭게 ‘장진 어록’이라는 말을 양산해낸 라이브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코리아>(이하 <SNL 코리아>, 채널 tvN)는 스타들이 다양한 무대 세트를 넘나들며 ‘생방’으로 한국사회에 대해 뼈있는 농담을 던지는 정치풍자성 강한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장진’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낸 연극, 그리고 그런 연극의 본질을 똑 닮은 라이브쇼를 통해 장진 감독은 동시대와 함께 호흡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즘 많이 바빠 보인다. =죽겠다. 오늘도 <리턴 투 햄릿> 공연 끝나면 밤에 <SNL 코리아> 작가회의가 있다. 회의 마치면 4회차 게스트인 박칼린씨 만나 대본도 봐야 하고. 그래도 재밌고 신난다. 그러니까 힘들어도 하는 거지.

-4년 만에 연출작 <리턴 투 햄릿>으로 대학로 무대에 돌아왔다. =처음부터 <연극열전4>에 속한 작품은 아니었다. 올겨울에 무리를 해서라도 연극을 한편 올릴 생각은 있었는데, <연극열전>팀과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프로그래머를 맡은 (조)재현이 형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정말 좋은 연극을 작업하는 친구들이 많다. 재현이 형 역할이 그런 알찬 작품, 사람들을 찾는 건데, 그러려면 <연극열전>이 우선 잘되어야 하지 않겠나.

-<리턴 투 햄릿>은 13년 전 공연했던 <매직 타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작품을 다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매직 타임>은 13년 전 신하균, 정재영, 이문식과 함께 공연했던 작품이자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내가 했던 작품을 다시 올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리턴 투 햄릿>은 다시 한번 올리고 싶었다. 13년이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거 아닌가.

-<햄릿>은 본 공연이 아니라 무대 뒤편 분장실의 배우들을 조명하는 연극이다. 배우들이 대사를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말하는 것 같더라. =배우들도 “이거 우리 얘기”라고 하더라. 김원해 형은 대사치며 몇번이나 울기도 했다. 자기 처지와 너무 비슷하다며. <리턴 투 햄릿> 속 등장인물이 겪는 일은 연극배우들이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얼마 전 이문수 선배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죽었다. 선배는 그날도 산울림 소극장에서 하는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포조 역)에 올랐다. 우린 상주도 없는 빈소를 지켰다. 그분이 무대에서 치는 대사가 대사겠나. 곡이지. 연극배우들에겐 관객과 타협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건 연극배우들의 신앙 같은 거다.

-프레스콜에선 배우 정재영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사에 반영했다고 했다. =13년 전 <매직 타임>을 공연하기 직전에 재영이가 <경찰청 사람들> 재연배우로 출연하고 있었다. 난 재영이를 고등학생 때부터 알았고, 찬란하게 무대 위에서 빛나는 배우란 걸 아는데, TV에서 엑스트라로 나오는 게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당시 재영이가 결혼할 분도 있었고, 내가 선배로서 앞길을 열어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너, 그거 그만하면 안되냐. 나랑 같이 가자” 그 얘기를 깡다구만으로 말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재영이가 맡은 캐릭터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게 했던 거다.

-정재영이란 배우가 스타가 된 지금, <리턴 투 햄릿>을 공연하는 새로운 배우들을 보는 감흥이 있겠다. =출연진 중 앞으로 대학로를 책임질 배우들이 절반 이상이다. 이런 친구들이 만들어낸 무대가 관객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으면 그걸로 된 거다. 여전히 연극으로 돈을 벌려면 매체를 배우고 와야 한다는 인식이 대학로에 있다. <리턴 투 햄릿> 봐라, 굳이 탤런트 캐스팅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을 듣고 싶다. 작품만 좋으면 된다는 환경이 조성되면 연극계가 진짜 세질 거다. 그런 점에서 이건 의미있는 싸움이다.

-<리턴 투 햄릿>의 배우들이 <SNL 코리아>에도 종종 보인다. 김원해, 김슬기 등. =<리턴 투 햄릿> 이전부터 나와 같이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 대부분이다. 원해 형이야 워낙 잘 알던 사람이고, 김슬기는 올해 초 내가 연출을 맡았던 연극 <로미오 지구 착륙기>(서울예대 창작극 동아리 ‘만남의 시도’ 창립 30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하며 눈여겨봤던 배우다. 스물한살인데 목소리가 또랑또랑하니 잘하더라. 그리고 이게 원체 내 방식이다. 내 작품이 언제 스타 시스템이었던 적이 있나? 늘 연극하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데, 그 배우들이 스타가 됐다는 이유로 내 작품을 스타 시스템으로 보는 시선이 싫다.

-<SNL 코리아>는 어떻게 기획, 연출을 맡게 됐나. =어릴 때부터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를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자뻑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이건 나밖에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NL>의 특성상 대본, 야외 촬영, 캐스팅에서부터 연출까지 한명이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영화감독만 하던 사람이 이걸 할 수 있겠나. 방송 연출만 하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tvN쪽에 얘기했다. 정말로 이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면 내게 전권을 달라고. 이제 2주차인데 벌써 내 개런티 1천만원이 다 날아갔다. 돈을 떠나서, 이건 무조건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내 자존심이 걸려 있는 작품이다.

-그렇게까지 목숨 걸고 이 프로젝트에 임하는 이유가 있나. =<SNL 코리아>를 시작하면서 우리 인생을 왜 ‘라이브’라고 표현하는지 깨달았다. <SNL 코리아>, 30분만 일찍 녹화해도 정말 편하다. 하다가 재미없으면 컷하고 다시 찍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라이브쇼여야만 하느냐. 라이브란 너의 심장 소리와 내 심장 소리가 같다는 거다. 절대로 당신보다 미리 가 있거나 늦게 가 있지 않겠다는 거다. 한마디로 시대를 껴안고 가겠다는 거다. 연극이, 인생이 그렇듯이.

-<SNL>이라는 틀을 한국으로 가져오면서 어떤 고민을 했나. =우선 큰 틀을 바꿀 생각은 안 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SNL 재팬>을 봤는데 코너를 송두리째 바꿔놨고 재미도 없었다. 그럴 거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지 뭐 하러 사오나 싶더라. 음악과 퍼포먼스, 코미디와 정치풍자를 아우르는 형식은 오리지널의 틀을 그대로 가져오고, 여기에 한국에서 통용될 만한 이야기들을 집어넣었다. 미국과 한국식 코미디가 완전히 다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장 화제가 되는 코너는 직접 앵커로 나선 ‘위켄드 업데이트’다. 요즘 개그맨이 국회의원에게 소송당하는 세상인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매주 발언하는 것이 벌써부터 걱정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수위 조절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웃기다. 대한민국이 정말 힘들구나 싶다. 대통령이, 장관이 한 말을 방송에서 패러디하고 흉내냈다고 정치적 노선과 결합해 법적으로, 사적으로 재앙을 내린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참여정부 시절엔 어땠나. 한나라당이 국회의원들 모아놓고 연극한다면서(<환생경제>) 대통령을 인수분해해놓지 않았나. 걱정하지 않는다. 갈 데까지 가볼 거다. 건드려만 다오, 다. (웃음)

-직접 ‘위켄드 업데이트’의 진행을 맡은 이유는 뭔가. =연기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뉴스와 풍자와 호흡에서 <SNL 코리아>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오리지널 <SNL>에서도 메인 작가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정치풍자와 코미디가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SNL 코리아>는 일견 <개그콘서트> <나는 꼼수다>와 비교되기도 한다. =글쎄. 아마 <SNL 코리아>가 그들 중 가장 중간적인 위치에 있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다만 우리 작품만의 개성이 있다면 스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풍자의 한가운데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배우 섭외가 가장 힘들다. 특히 광고를 끼고 있는 배우들이 민감해 한다. 생방송으로 진행된다는 점, 야외 촬영, 리허설 등 일주일에 최소 4일을 우리 프로그램에 붙박이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듯하다.

-방송의 큰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 =시즌1은 총 여덟개의 에피소드를 구상했는데 반응이 좋아 더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의 목표는 프로그램의 총괄적인 이미지를 잡는 거다. 4, 5회 정도 지나봐야 작품의 정체성이 나오고, 배우들도 감을 잡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시즌1은 연기자들의 힘에 기대야 할 것 같다. 이후 스포츠 스타, 정치인, 뮤지션 등 ‘비연기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또 전환이 있을 테고.

-연극과 방송에 푹 빠져 있는 듯하다. 영화 연출 계획은 없나. =사실 올여름 들어가기로 했던 <아시안 뷰티>가 1년 이상 뒤로 미뤄졌다. 한·중·일 합작 프로젝트였는데 일본 지진 때문에 무산된 거다. 솔직히 영화감독으로서의 목표나 꿈이 지금으로서는 없다. 내후년까지만 감독하고 그만해야지, 그만해야지 한다. <씨네21>과 인터뷰할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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