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이었나. 을지로 골뱅이집에서 병맥주를 축내던 중 식당 벽걸개에 눈이 갔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골뱅이는 콘드로이틴과 타우린이 풍부해 정력과 스태미나 증진에 특효라 알려져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 골뱅이를 언급한 건 사실이겠지만 드라마로 치면 사극에서 허준이 콘드로이틴과 타우린에 관해 이야기하는 셈. 이런 식의 이상한 정보는 TV 음식프로그램에도 널려 있다. 식당 주인의 부풀린 말을 그대로 받아쓰기도 하고 식당 손님들이나 연예인들이 담백하다는 말을 ‘단백하다’고 잘못 쓰는데도 굳이 고치지 않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 “아으음~ 으음~ 캬아아~ 후르릅~ 쩝쩝” 등의 과장된 리액션을 구경하고 있으면 한국인이 이다지도 게걸스런 민족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식상해!
이 틈을 비집고 인기를 끄는 MBC <생방송 금요와이드>의 한 코너인 ‘사유리의 식탐여행’은 일본인 리포터 후지타 사유리의 솔직하고 엉뚱한 맛 표현을 내세운다. 콩비지를 한술 떠먹고는 “맛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유리. 그러게 간을 하지 않은 콩비지가 무슨 엄청난 맛이 있겠어. 당황해서 양념장을 뿌리면 맛있다고 설득하는 식당 주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방송사에서 취재 오는 날짜를 착각하고 파마를 새로 말던 아주머니는 보자기를 쓴 채로 카메라 앞에 앉았고 사유리에게 사투리를 지적당한 주방장은 누가 더 서울말을 잘하는지 작은 다툼을 벌인다. 번듯하게 차려낸 한 상보다 그 음식을 차린 사람이 더 흥미롭다.
그리고 이보다 더 깊이, 근본적으로 음식과 그 음식을 먹고 사는 사람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KBS1TV의 교양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이다. 각종 생선을 넣고 끓인 모리국수가 궁금해 통영의 가정집 주방 문턱을 넘은 최불암 선생은 쑥스러운지 손으로 귓불을 매만지며 한 국자 간을 본다. “어우 매와!” <한국인의 밥상>엔 음식의 맛을 찬미하는 현란한 형용사는 나오지 않는다. 최불암은 어느 지방 어떤 음식을 먹어도 긴 말이 없다. 표현을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예전 음식 드라마 <식객>에는 최불암이 김래원이 만든 음식을 한입 먹었더니 요리만화풍의 CG가 펼쳐지는 장면이 있었다. 물론 엄청나게 웃겼지. 그런데 최불암의 입에서 앓는 소리 같은 탄식이 새어나오는 순간, 웃음을 이기고 입에 침이 고이고 말았다. 최불암은 누구보다 훌륭하게 맛을 표현할 수 있지만 맛이 좋다, 나쁘다로 가름할 수 없는 현지 사람들의 끼니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표현의 수위를 정한 것이리라.
지난주 구룡포 과메기 편에는 이례적으로 최불암이 맛에 대해 길게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과메기를 찾아 들어간 포항 죽도시장에서 만난 거대한 개복치. 삶은 뒤 묵 형태로 굳히는 포항쪽의 잔치음식이라는데 한입 맛본 최불암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 맛도 없어. 이렇게 맛없는 걸 어떻게 파슈? 얼음보다도 더 맛이 없는 것 같아.” 나쁜 맛이 아니라 무미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 ‘단백한 맛’ 따위의 수사는 낄 틈이 없다. 그리고 프로그램 말미에는 정말로 한 접시씩 개복치 묵을 담아 먹는 포항 사람들의 피로연 풍경을 스케치한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한번 틀리지 않는 정갈한 자막. <동의보감> <규합총서> 등 옛 자료를 인용해도 정확한 구절을 보여주며, 음식에 대한 잘못된 풍문을 바로잡는 기본에 충실한 점도 <한국인의 밥상>에 신뢰를 더한다. 절절 끓는 아랫목에 발을 녹이는 듯한 최불암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는 양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