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꽤 좋으신 편이다. 비록 본인만의 메뉴를 개발하거나 하진 않아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손맛을 보여주신다. 하지만 보통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달달한 메뉴나 조리법보다는 각종 김치류, 찌개류, 탕류 등 어른들의 입에 착 감길 만한 메뉴에 강하시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점이 항상 아쉬웠다. 초등학교 소풍날 친구가 싸온 캐릭터 모양의 김밥, 놀러간 친구네 집 식탁에 올라온 하트 모양이 그려진 알록달록한 볶음밥, 파슬리로 장식한 한입 크기의 크로켓 등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단순히 먹는 음식의 의미를 넘어 시각적인 자극을 받고 오는 날이면 나는 엄마한테 ‘나도 집에서 예쁜 음식 좀 먹어보자’며 졸랐다. 그러면 엄마는 ‘나는 그런 것 모른다’며 같은 말만 되풀이하셨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무작정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엄마 요리사가 될 테야!’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그렇지만 엄마가 되기 전 먼저 짝을 만나야 한다는 인생의 큰 숙제를 아직 풀지 못했다는 핑계로 요리 배우기는 무작정 내일 그리고 내일의 일로 미뤄지고 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운동이나 해볼까 싶어 펼친 백화점 전단지에서, 1회 강의로 간단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원데이쿠킹(One Day Cooking) 강좌를 발견했다. 그중 ‘라면의 모든 것’이라는 강좌를 보자, 이참에 단기 요리강좌나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니 우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하고, 근무시간과 겹치지 않아야 하며, 요리 왕초보인 내가 부담없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몇 가지 기준을 두고 걸러내보니, 3개 강좌를 신청할 수 있었다. 요리라 말하기엔 절대적으로 무리가 있지만 사실 요리가 아니어서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칼이라는 도구를 쓰며 무언가를 배우고 온다는 사실이 나에겐 흥미로웠으니까.
몇주 뒤 나는 과일 예쁘게 깎기 수업을 들었다. 한달 뒤에는 테이크아웃 샌드위치(그냥 샌드위치가 아니란다!) 만들기 강좌가 기다리고 있다.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듣다가 차츰 난도를 높여 신청해볼 작정이다. 그리고 인터넷 레시피를 뒤적이기보다는 책을 구입할 테고, 머지않아 나의 가장 훌륭한 스승인 어머니에게 여러 조언을 구할 날도 올 테지.
이번 주말엔 언니네 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어린 조카의 반응을 살펴볼까보다. 2년 전에 사놓고 모셔두기만 한, 자연을 통째로 먹는다는 마크로비오틱 요리책도 들고 가서, 아무거나 메뉴 하나 골라보라고 해야지. 무얼 고르든 나는 처음이니 두려울 게 없다. 당장에 맛도 모양도 영양도 킹왕짱인 엄마 요리사가 되기엔 갈 길이 멀고, 그보다 먼저 요리에 재미붙인 이모부터 되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