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채널의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중계방송만 주야장천 보던 때가 있었다. 결승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왠지 모를 벅찬 마음으로 만사 제쳐두고 TV 앞에 정좌했다. 한때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컴퓨터와의 스타 대전이었다(물론 치트키를 사용해 압도적으로 이기는 시나리오를 짠다). 시간이 날 때면 직접 경기장을 찾기도 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심심할 때나 스타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많고 많은 게임 중 왜 하필 스타냐고 묻는다면… 스무살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10년 전 대학 새내기 때였다. 한 선배가 할 일 없는 후배 몇명을 PC방에 데리고 갔다. 단축키는 고사하고, 유닛의 이름이며 승패의 방식조차 알지 못한 채 게임에 투입됐다. 시키는 대로 미네랄과 가스를 캤고 건물을 하나씩 지어나갔다. 집짓기 게임인가 싶었는데 불쑥 땅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러커의 공격에 애써 지은 건물들이 불타기 시작했다. 적에 대한 적개심도 덩달아 활활 타올랐다. 잠자고 있던 게임 본능이 깨어났다. 그로부터 2∼3년간 멤버만 모이면 PC방으로 출석했다. 단골이던 학교 앞 ‘25시 PC방’에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 하루를 25시간처럼 보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도 그때 어렴풋이 깨쳤다. 생애 처음 만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애정은 그렇게 가슴 한쪽에서 무럭무럭 자랐다(알고 보면 순정녀!).
혼자서 조용히 수양하듯 하는 게임에 적합한 인간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을 즐긴다. 2006년 즈음부터 집중적으로 스타 방송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 이제동이라는 프로게이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해 이제동은 신인상을 휩쓸었다. 게임에서 이기면 아이처럼 기뻐하고 지면 바득바득 이를 가는, 지독한 연습벌레 이제동을 좋아한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청춘의 호시절을 연습 또 연습으로 채워가는 그에게서 언제나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이런 노력형 인간은 존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요즘 스타판이 심하게 부침을 겪고 있다. 스타와 <스타크래프트2>의 어정쩡한 동거는 차치하더라도 이건 뭔가 심상찮다. MBC게임이 채널 성격을 변경하면서 게임 채널 하나가 사라지게 됐다. 세개의 프로게임단이 해체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프로게이머들이 대거 은퇴했다. 그리고 우려의 시선 속에 제8게임단이라는 외인구단 같은 새 팀이 창단됐다. 이제동도 올해부터 제8 게임단에서 뛴다. 다행히 지난 11월26일, 프로리그 개막식이 무사히 열렸다. 좋아하는 선수들을, 좋아하는 게임을 더이상 볼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당분간 접을 수 있게 됐다. 오늘은 어떤 명경기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할까, 오늘은 누가 또 전설을 써내려갈까…. 이런 설렘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