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이 생긴 뒤로, 좋은 것 하나는 다양한 외국의 TV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즐겨 보는 드라마는 <소프라노스> <프렌즈> <섹스 앤 시티> <앨리의 사랑 만들기> 등이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끌리는 건 <앨리의 사랑 만들기>.
<앨리의 사랑 만들기>의 원제는 ‘앨리 맥빌’ 그러니까 여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딴 제목이다. 처음 <앨리의 사랑 만들기>를 봤을 때는 제목 그대로, 앨리의 사랑이야기가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돼서 법률회사에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8살 때부터 남자친구였고 대학 시절에는 애인이었던 남자를 만나다니. 그는 이미 결혼도 했다. 그것도 금발에 미인이고, 머리까지 좋은 변호사와. 앨리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지사. 앨리는 수많은 남자를 만나고 또 만난다. 마치 인생의 목적이 ‘남자’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앨리의 사랑 만들기>는 점차 시야를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앨리의 사랑만이 아니라 직장동료 전체에게 고른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앨리의 사랑 만들기>는 더욱 풍요로워졌다, 더욱 그윽해지고.
세상이란 늘, 밖으로 시선을 돌릴수록 밝아지게 마련이다. 요즘 <앨리의 사랑 만들기>를 보면서, 나는 존이란 인물에게 시선이 간다. 존은 법률회사의 공동사장이다. 천재적인 소송전문 변호사로 날리는 인물이지만, 어깨에 힘을 주거나 타인을 무시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그는 따돌림받는 아이였고, 못생겼고, 말까지 더듬었다. 그때 그의 소원은 성공해서 아름다운 미인을 대동하고 고등학교 동창회에 가서 모든 이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목표’, 그가 다다라야 할 곳이 아니었다. 한 에피소드에서 존은 해고당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변론을 맡게 된다. 그들은 창업공신이었지만, 회사가 확장되자 해고당한다. 그들의 이미지가 회사의 영업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강박증으로 계속 박수를 치고, 누구는 여장을 하고, 누구는 지나치게 살이 쪘다. 게을러 보이고, 괴짜로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Freak!
그들을 변론하면서, 존은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들, 괴짜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사장을 몰아붙이고, 말까지 더듬는다. 최후변론에서 그는 말한다. “아이들은 때로 지나치게 잔인하다. 외모나 취향 등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면 모든 것은 바뀐다. 거기에서는 더이상 외모나 취향, 독특한 습관 혹은 사고방식 같은 것으로 따돌림당하지 않는다. 하나의 일을 수행하는 능력과 재능만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 어른들의 세계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따돌림받았다. 괴짜라는 이유로.” 고통스런 최후변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패배한다. 그리고 존은 괴짜들과 잘 어울린다는 이유로, ‘엘리트주의자’인 애인에게도 절교당한다. ‘Freak’는 여전히 성인의 세계에서도, 따돌림당한다. 단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앨리의 사랑 만들기>는 그 묘한 어른의 세계를 살아가는, ‘어린이의 마음을 잃어버리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보여준다. 정말 지독한 해프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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