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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 그와 그녀 담담(淡淡)한 섬세함으로 공명하다 (2)
정리 김혜리 사진 손홍주(사진팀 선임기자) 2011-12-06

고현정의 '쪽' ♥ 고현정, 음악인 윤상과 재회하다

윤상_우리 20년 만이군요. 제가 고현정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991년 가을이니까.

고현정_(장난스런 표정으로 주저하다) 저기… 이거 말도 안되는 소리긴 한데 왜 저랑 상의도 없이 결혼하셨어요?

윤상_하하. 현정씨도 결혼하셨기에.

고현정_아… 그렇구나. 내가 먼저 했구나. (좌중 폭소)

윤상_오래전 노영심씨에게 고현정씨가 제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어요. 정말이냐 되묻고 약속 만들어보자고 했지만 자리가 마련되진 않았죠. 그리고 한 7년 유학을 다녀오며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번 인터뷰에 초대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그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맞아, 그분이 내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지.

고현정_사실 윤상씨가 저와 비슷한 시기에 라디오 DJ를 해서 당시 MBC에서 진행하시던 프로그램에 초대 손님으로 간 적 있어요.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그리고 제가 DJ였던 <KBS 인기가요>에 게스트로 모신 일도 있고요.

윤상_그랬던가요? 확실한 기억이 하나 있어요. 변우민씨가 진행하던 <여기 젊음이>라는 토크쇼에 밴드로 참여했는데 고현정씨가 게스트로 오셨죠. 아마도 대학교 저학년이었는지 수업에 늦는다고 녹화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저희가 서둘러 진행했거든요. 속으로 “학교 정말 열심히 다니는구나. 되게 순수한 사람인가보다” 그랬죠.

고현정_예전엔 제가 좀, 그랬어요. (웃음) 저야 미스코리아 되기 전 고등학생 때부터 윤상씨가 작곡하신 황치훈씨의 <추억 속의 그대>부터 즐겨 듣다가 방송국에 와서 뵙게 된 것이고 1집 《이별의 그늘》 이후 계속 음악을 팔로했어요. 그런데 소설이나 시도 읽고 아주 좋으면 저자를 직접 만나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만나지 말고 작품으로만 접하는 쪽이 오히려 ‘으실으실’ 좋을 때가 있더라고요.

윤상_(끄덕이며)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고현정_그렇게 지내오다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심사하시는 모습을 뵙게 됐어요. 저도 아이들을 낳아봐서 그런지 그 프로그램은 그냥 쇼 프로그램처럼만 안 보이는데 윤상씨가 거기서 참가자의 ‘태도’를 언급하시는 것이 너무나 동의되고 제 스타일인 거예요. (웃음) 그래서 뵈어야겠다 마음먹었고 만나면 이 질문부터 드리고 싶었어요. 노래 잘하는, 재능있는 친구들에게 ‘태도’라는 단어를 쓰실 때 어떤 심정이 그 뒤에 있나요?

윤상_저는 다만 전반적인 사회에 대한 예의를 말한 것이었는데 권위의식이라는 일부의 평을 들었어요. ‘갑질한다’(계약 관계에서 강자인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함부로 힘을 휘두르는 언행)는 요샛말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저로선 적어도 오디션에 왔다면 입사시험 응시자만한 긴장감이 보여야 하는데 자신감 피력이 전부인 양 행동하는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방송의 재미를 위해 편집에서 저를 독한 캐릭터로 만들어간 측면도 있고요. 제가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다섯에 유학을 다녀왔는데 자유분방한 줄 알았던 미국인도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어느 수준까지는 비슷한 기대치가 있었어요.

고현정_전혀 독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제 주변에서는 모두 응원했어요. 전 말하자면 안전한 상황을 원하는 사람이에요. 적재적소에 가이드가 있어서 튼튼한 울타리와 틀 안에서 까불고 놀기도 하고 쉬기를 바라는 거죠. 만약 울타리가 굳건치 않다면 그 안에서 널브러질 순 없잖아요. 방송이건 오디션이건 힘있는 사람들이 친절하고 부드럽게만 이야기해주는 것이 당사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모양새로 영향을 끼칠지 걱정스러웠는데 적재적소에서 턱턱(말뚝 박는 시늉을 하며) 정신 차리게 하는 말씀을 해주시니까 시청자로서 안전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윤상_평생치 악플을 다 먹은 날도 있었어요. 저의 센 지적만 나오고 그 지적을 있게 한 참가자의 행동은 편집에서 삭제돼 멀쩡한 사람 다리 건 것처럼 보인 날이 있었거든요. (웃음) 이제는 참가자의 2/3가 추려졌으니 그리 심한 말을 할 친구들도 없어요.

고현정_악플을 던지는 분들도 저간의 사정이 다 있겠죠. 그러나 감히 제가 말씀드린다면 그처럼 편집의 트릭 같은 장치에 즉각 반응하고 오해하는 시청자군 바깥쪽에는 좀더 점잖은, 그러니까 상식적인 책임감과 죄책감을 갖고 있는 분들의 층이 두텁게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에 댓글 다는 분들 의견을 수렴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분들 바깥쪽에도 여러 겹의 보이지 않는 의견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저, <위대한 탄생>에서 끝까지 가길 바라는 친구가 생겨버렸어요. 배수정씨라고.

윤상_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고현정_충분한 감각과 끼, 촉과 결이 모두 느껴지면서도 들 자리와 날 자리를 알면서 수줍게 발산하는 에너지가 좋았어요. 그녀의 관상? 골격? 그런 것들이 다치면 확 다치고 “난 역시 이쪽이 아니었어” 낙망하게 될 같아서, 심지어 저 사람이 엔터테인먼트계에서 소모되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까지 했어요. (웃음)

윤상_참, 깊게 보시네요. 확실히 본인도 순위가 올라갈수록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던 경우라 처음에는 즐겁게 출전했는데 점점 운명의 갈림길 같은 순간으로 다가올 겁니다. 이러다 내가 정말 가수가 되는 걸까, 하는. 저는 본인의 실력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 그런 갈등이 없지 않을까 했는데 컨디션에 부침이 있는 걸 봐서 분명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실은, 세련둥이가 아니라

고현정_오늘 20년 만에 저를 보셨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윤상_이 사람은 왜 그때보다 더 예쁠까? 무슨 이유일까? (웃음) 현정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최근 10년간 여배우들을 가까이서 본 경험이 없어서 더욱 빛나 보이는 걸 수도 있고.

고현정_크, 이런 쓴맛! 끝까지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공정함이 전 참 좋아요. “굉장히 예뻐지셨다,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여배우를 못 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제 이름의 마지막 자가 조정할 정(諪)이 아니라 조정 정(廷)자라 그런지 몰라도 저는 밸런스, 공평, 공정, 정확함, 누구의 시점도 아닌 객관적이고 정직한 상태에 굉장히 끌려요. 누군가가 “내가 진짜 솔직히 말하는데…”라고 말문을 열면 저는 그래요. “안 들을래. 그런데 난 네 편이야.” 솔직하게 얘기하겠다는 전 자기편 들어달라는 말로 들리거든요. 만약 누군가가 꼭 의견을 듣고 싶어 하면 “그러면 정직하게 이야기해봐. 듣고 말해줄게”라고 하죠.

윤상_그동안 출연하셨던 영화 <여배우들>을 보면서도 느낀 바가 있습니다. 물론 페이크 다큐멘터리니까 연출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고현정씨가 극중에서 윤여정 선생님이나 선배 배우들을 대하는 행동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분들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딱 알맞게 하시는데 그런 모습도 아주 잘 어울리시더군요.

고현정_평상시엔 더 잘해요. (웃음)

윤상_천생 이분은 배우구나 했어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최근 출연작에서 상당히 센 인물을 연기하는 걸 보면 실제로도 강하지 않을까 짐작했는데 선배한테 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며 나도 저런 후배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고현정_(은근한 미소) 메이 아이?

윤상_예. 플리즈입니다. (웃음) 규칙적으로 운동이라도 하십니까?

고현정_아뇨. 집에서 들숨날숨 숨쉬기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이른바 날씬한 몸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되면 스트레칭을 해서 몸을 늘려요. 줄여야 할 때는 척추 뼈를 오므려서 작아지고요. (좌중 경청하다 허탈한 실소)

윤상_하하. <무릎팍 도사>에서는 매우 이성적인 인상을 받았는데 오늘은 4차원적인 면모를 보네요. 현정씨, 이거 설정이죠?

고현정_정말이에요. 뼈를 늘리면 공간이 늘어나니까 살도 가잖아요.

윤상_책 한권 쓰시면 대박 나겠는데요. 너도 나도 누워서 몸 늘리는 광경이 떠오릅니다.

고현정_20년 전 제 눈에 비친 윤상씨와 주변 분들의 집단은 무척 세련된 그룹 같았어요. 푸른 셔츠에 안경 낀 모습도 그렇고 앨범 재킷도 그렇고요. 당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말숙이였던 저는 (윤상 폭소) 저분들은 나랑 다른 ‘서울 사람’ 같다, 세련둥이들이다, 그렇게 바라봤어요. 다른 연예인들은 아이들 같은데 윤상씨는 좀 남자 같다는 느낌이랄까?

윤상_실상은 달라요. 흔히 저를 유복한 이미지로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주변의 음악하는 동료들을 둘러보면 저처럼 복잡하고 골치 아픈 환경을 가진 친구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 때문에 섞이기가 애매했어요. 어려서 가출을 하고 싶어도 이미 부모님을 떠나 할머니하고 살아서 가출을 할 수가 없었는데요. (웃음) 친가에 가면 외가에 대한 불만을, 외가에 가면 반대 이야기를 듣다보니 대립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게 됐고 그런 경험 때문에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힘들었어요. 오히려 저는 서른다섯에 유학을 간 이후에 진심으로 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도 듣고 저와 달리 친화력있는 아내의 영향으로 한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게 됐어요. 회상하자면 거꾸로 저는 비주류이고 고현정씨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안에 계신 분이어서 말 붙이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늘 어머님과 다니기도 하셨고. (웃음) 이선균씨가 《Song Book》 앨범에서 노래로 참여해주신 일을 제외하면 사실 배우 중 제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간접적으로나 전해오신 분은 현정씨가 유일해요. 그런데 홍상수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떠셨나요?

고현정_제 첫 영화가 감독님 작품이었다는 점이 두고두고 자랑스러워요. 그분은 삿된 것, 잡스러움이 없어요. “현정씨 오늘 우리 술 먹지.” “네.” “오늘은 영화 봐요.” “네.” 그런 점이 좋아요. 촬영 당일 아침에 시나리오를 주시는 방식도, 제가 대사 외우는 일이 힘든 애는 아니니까 잘 때 개운하게 자고 아침에 숙제 받는 것이 참 좋아요. 산뜻해요.

윤상_<해변의 여인>을 보고는 의외였어요. 홍상수 감독님 다른 영화에서 못 보던 캐릭터로 나온 점도 그랬지만 작사가이자 프로듀서로 저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친구 박창학씨가 그 영화를 보고 김승우(영화감독 중래 역)씨가 자기 생각을 도형으로 그려 설명하는 장면에 대해 “너, 저런 거 하면 잘 어울리겠다”고 하더라고요. 가까운 사람에겐 제가 말이 많은지. 저런 비굴한 면이 내게 있나 걱정도 했지만. (웃음)

고현정_그리고 또 하나. <이별의 그늘> 첫 소절이 “문득, 돌아보면…”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해변의 여인>에서 제가 처음 나오는 장면이 자동차 조수석에서 문득 (연기를 재연한다) 돌아보는 거예요. (웃음)

윤상_신기한 일이 또 있어요. <해변의 여인>에서 고현정씨의 캐릭터를 생각하며 홍 감독님이 하임이란 친구를 만났는데, 제 작업을 도운 적 있는 분이에요. 오스트리아에 클래식 음악 유학 갔다가 대중음악 하겠다고 때려치우고 돌아온.

고현정_아하, 그래서 제가, 문숙이가 독일 유학생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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