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크기 71 x 86 x 110mm (W x H x D), 본체 무게 211g
특징: 1. 아날로그 흉내만 낸 제품들은 가라. 진정한 아날로그 동영상 촬영. 2. 35mm 필름만 있으면 짧은 동영상 한편을 만들 수 있다. 3. 액세서리로도 활용 가능한 클래식한 외관.
10여년 전에 폐간된 <키노>라는 영화잡지가 있었다. <키노>는 단순히 ‘영화잡지’라고 부르기 애매할 정도로 인문학적인 텍스트를 제공하던 영화지였다. 물론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허세용 잡지기도 했다(사실 그런 허세는 좀 필요하지 않나 싶을 때도 있지만). 마치 영어 원서를 읽는 것처럼 내용의 30% 정도밖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키노>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뭘 좀 아는 아이처럼 행세할 수 있었다. <키노>가 폐간되고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오랜만에 키노라는 단어를 들었다. 로모키노라는 제품이다. 맞다. 바로 스냅사진의 대명사인 로모 카메라와 자매 제품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느꼈겠지만, 로모키노는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을 찍기 위한 제품이다. 그렇다고 요즘 나오는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처럼 디지털 메모리에 매끈하고 해상도 높은 영상을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35mm 필름을 써야 하고(세상에), 36컷짜리 필름을 쓰면 약 40~50초의 영상을 (겨우) 찍을 수 있다. 그것도 초당 3~5프레임 정도의 띄엄띄엄 끊어지는 영상으로. 갑자기 뤼미에르 형제의 시대로 돌아가버린 걸까? 틀린 말은 아니다. 로모키노는 우리를 정말 영화가 처음 만들어지던 그때로 인도한다.
생긴 것도 클래식하다. 필름 카메라의 그것과 같이 렌즈가 있고, 사진에서 보이는 저 손잡이를 계속 돌려 프레임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러니까 빨리 돌리면 프레임률이 올라가 좀더 끊김없는 자연스러운 영상이 가능하다. 여기에 최대 0.6m까지 촬영 가능한 클로즈업 버튼과 상단에 플래시를 끼울 수 있는 장치까지. 이 정도가 전부다.
‘아, 이건 좀… 너무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 요상한 기계의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스마트폰으로 영화 한편을 찍을 수 있다는 이 시대에 필름을 넣어서, 그것도 손으로 레버를 움직여 영상을 찍는다는 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거룩한 느낌도 든다. 올여름 개봉했던 <슈퍼 에이트>의 꼬마들이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그 난리를 치는 모습을 귀엽게 본 사람들이라면 이 제품의 어리석음을 아날로그 정서 같은 식으로 바꿔 부를 자격이 있다.
여기까지만 읽고 이걸로 영화 한편 찍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진정하기를. 물론 못 찍는 건 아니다. 다만 필름 값이 어마어마하게 들 테고, 결과물도 썩 좋지 않을 테고, 편집도 힘들 테니 그다지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 그러면 이 제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꼭 간직하고 싶은 친구의 생일이나, 연인들의 추억 보관용 정도면 적당하다(다른 사람들이 로모키노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고 싶다면 vimeo.com/lomography/videos를 참고할 것). 5분 이내의 촬영이라면 아쉬운 프레임과 빈티지한 색감이 오히려 장점이 될 테고, 가끔 봐도 즐거울 테다. 아마 영화잡지 <키노>가 그랬던 것처럼, 로모키노도 일종의 허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정신없는 세상에 그 정도 허세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8만8천원.
PS. 갑자기 떠오른 의문점 하나. 일단 영상을 찍는 것까지는 좋은데 스캔은 어떻게? 저걸 일일이 다? 로모키노로 촬영한 영상의 스캔 및 영상 작업은 홍대에 있는 로모그래피 갤러리 스토어 서울(02-326-0255)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