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음악 웹진 블로고테크의 간판 영상 시리즈인 <테이크 어웨이 쇼> 중 시규어 로스 편의 스틸숏. 이 영상은 단 한번의 테이크로 밴드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곡을 연주하는 모습과 그 주변 상황을 라이브로 기록한 것이다. 통상적인 뮤직비디오와도, TV나 라디오 방송국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연주와도 다른 거친 생동감으로 많은 음악, 영상, 음악 영상 팬을 사로잡았다.
당신은 문화인입니까. 당신의 문화는 혹시 반쪽짜리는 아닌지요. 소비만 하면서 문화를 만끽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를 꼭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가진 적이 없어도 좋습니다. 고가의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아도 좋습니다.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누군가와 무엇이라도 주고받고 싶은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미디액트(www.mediact.org)와 <씨네21>이 함께하는 영상공작소는 영상으로 대화하고픈 독자와 관객과 시민의 마음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네 번째 지상강좌 주제는 ‘원테이크 라이브 음악 영상’ 만들기입니다. 안내자는 음악영상블로그 렉앤플레이의 운영진으로 활동 중인 고아침입니다. 어떤 뮤지션의 영상 작업이나, 주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화면에 담아두고 싶다거나, 음악이랑은 상관없지만 뭔가를 카메라로 찍어서 웹에 공유하고 싶다면 유용한 매뉴얼이 될 것입니다.
라이브 음악 영상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페이스 공감>이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나는 가수다> 같은 것을 상상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런 무대가 아니라 길바닥 같은 곳에 뮤지션을 던져놓고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그런 종류의 라이브 영상 이야기입니다.
위의 사진은 프랑스 음악 웹진 블로고테크(La Blogotheque)의 간판 영상 시리즈인 <테이크 어웨이 쇼>(The Take-Away Shows) 중 시규어 로스 편의 스틸숏입니다. 이 영상은 아주 긴 호흡, 아니 그렇다기보다도 단 한번의 테이크로 밴드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곡을 연주하는 모습과 그 주변 상황을 라이브로 기록한 것이며, 맨 앞과 끝에는 각각 카페 손님의 인터뷰와 밴드가 카페에서 퇴장하는 모습을 인서트로 담고 있습니다.
감독 빈센트 문은 이 영상 시리즈의 핵심 비디오그래퍼로서, 프랑스 로컬팀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밴드까지 많은 뮤지션들을 피사체 삼아 초기에는 파리 시내에서, 나중에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통상적이지 않은 공간에서의 즉석 연주를 카메라에 꾸준히 담아냈습니다. 마치 도그마95와 비슷한 방식으로 주위 환경을 통제하지 않으며 핸드헬드로 라이브 연주를 동시녹음으로 기록해 꾸준히 대량의 작업을 쏟아내는 그의 영상 스타일은 2006년 시리즈 시작 이래 통상적인 뮤직비디오와도, TV나 라디오 방송국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연주와도 다른 거친 생동감으로 많은 음악, 영상, 음악 영상 팬을 사로잡았습니다.
대안적 음악 채널로까지 기능하는 <테이크 어웨이 쇼>
곧 비슷한 발상의, 공연 실황과 뮤직비디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할 만한 영상 시리즈가 곳곳에서 생겨났습니다. 뮤지션을 택시 안에 데려다 연주하게끔 하는 시리즈, 누군가의 발코니나 베란다에서만 촬영하는 시리즈 등 특정한 컨셉에 맞춘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자신들이 기반한 도시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일상적이거나 독특한, 혹은 일상적이어서 독특한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한국에도 <라비아쇼>나 mnet의 <스트리트 사운드 테이크원>처럼 이들로부터 크고 작게 영향을 받은 영상 시리즈가 생겨났습니다.
<테이크 어웨이 쇼>를 위시한 이들 영상의 상당수는 이제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된 광대역 인터넷망과 블로그 서비스 및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도구 삼아 일종의 대안적 음악 채널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음악 방송 편성이 제한적인 데다 관심있는 뮤지션이 나오는 일은 손에 꼽을 수 있는 TV, 유료이거나 불법인 음원 서비스와 P2P, 공식 뮤직비디오가 아니면 팬이 찍은 조악한 라이브 영상이 대부분인 유튜브 등과 차별화되는 배포 방식을 만든 것이지요.
차별화는 영상 측면에서도 이루어집니다. 뮤직비디오를 포함해 많은 음악 영상들이 실제 음악 연주와는 엄밀히 말해 무관하게 존재하는 반면, 앞서 말한 종류의 영상들은 연주의 과정 그 자체, 즉 연주자의 행위와 소리가 울려퍼지는 공간과 음악이 지속되는 시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현장감을 강하게 줍니다. 제작 방식에서도 상당히 간단한 장비를 이용해 게릴라식으로 작업함으로써 전체적인 영상과 소리의 퀄리티가 거칠게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취향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고 매력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들 작업은 동시대의 뮤지션과 그들의 음악에 대한 일련의 기록인 동시에 그들의 연주가 이루어지는 도시 공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야 물론, 뮤지션을 길바닥에 데리고 나가서 촬영을 하면 영상에 당시의 도시 공간이 기록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볼 때 음악을 위한 공간인 공연장, 연습실, TV 세트 등이 아닌 길바닥, 누군가의 가게, 어느 빌딩, 공터, 뒷동산, 폐건물 등의 공간들이 음악 연주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공간에 잔류하지 않고 시간과 함께 흘러가버리는 음악이 존재하는 그 몇분 동안 공간의 맥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일종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식의 시도가 꼭 흥미롭다거나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위에 사는 누군가가 시끄럽다고 느낄 수도 있고, 고성방가로 신고해 경찰이 올 수도 있고, 아니면 경비원이 쫓아올 수도 있고, 장사에 방해된다고 누군가가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나가던 취객이나 깡패가… 어쩌다 보니 계속 비슷한 이야기인데, 뭐 결국 원래 음악 소리가 없는 곳에 음악이 있도록 하는 거니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쫓아오지는 않지만 딱히 재미도 감동도 없을 수 있겠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영상들처럼 꽤 볼 만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길거리로 나가라, 그리고 기록하라
2009년의 우리는 대학은 졸업했는데 딱히 할 일이 없거나,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거나, 뭐 아무튼 그랬습니다. 위에서 말한 종류의 영상들을 서로 소개해주고 또 할 일 없을 때 찾아보고 하다가 누군가가 이런 거 한번 해보자는 얘기를 꺼내서 ‘렉앤플레이’라는 이름을 짓고 우선 인터넷 도메인을 지른 뒤 이러쿵저러쿵 하다 보니 구성원이 5명이 되고 이렇게 뮤지션들과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흘러흘러 이 지면까지 오게 된 저는 앞서 말씀드린, 그리고 제가 속한 집단이 만들고 있는 특정한 종류의 라이브 음악 영상을 만들고 웹을 통해 배포하기까지의 과정을 앞으로 몇주간 살펴볼까 합니다. 다양하게 응용 가능한 하나의 매뉴얼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많은 인원이나 비싼 장비는 필요없습니다. 작업은 혼자서, 혹은 둘이서 하게 됩니다. 제가 속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하나의 영상을 제작하는 데 두명이 관여합니다. 또 물론 좋은 장비가 있으면 장땡이긴 하지만 비싼 장비가 없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독자가 어떤 뮤지션과 실제로 이런 영상 작업을 하거나, 엄마가 곧잘 뽑으시는 어떤 노래를 더 나이 드시기 전에 화면에 담아두고 싶다거나, 낭만 돋는 친구가 세레나데를 애인에게 바치는데 왠지 찍어두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거나, 아니면 음악이랑은 상관없지만 어쨌건 뭔가를 카메라로 찍어서 웹에 공유하고 싶다거나 할 때 이 연재가 언젠가 참고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본인이 만들어낸 콘텐츠를 본인의 채널을 통해 내보내는 일은 어렵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