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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목소리, 의식 않고 들으면 남자 같았죠?”
신두영 사진 백종헌 2011-11-08

김꽃비, 김혜나, 박희본- <돼지의 왕>에 목소리 출연한 세 여배우의 수다

왼쪽부터 김꽃비, 박희본, 김혜나.

<돼지의 왕>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다. 과거 중학생 주인공인 종석, 철이, 경민의 목소리는 김꽃비, 김혜나, 박희본이 연기했다. 세명의 여배우에게 <돼지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산영화제를 통해 한층 더 친해진 여배우들은 재잘재잘 잘도 떠들었다. 다소 두서없이 늘어놓은 수다를 부디 유쾌하게 들어주었으면 한다.

<씨네21>_근황 토크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김꽃비씨는 드디어 본인이 출연한 <창피해>의 개봉이 확정됐다고 들었습니다.

김꽃비_<창피해>는 11월에 개봉하고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몇개 있어요. 일본 작품이 두편 정도 있고요. 한국영화도 한편 준비하는데 음악영화예요. 그래서 기타를 배우고 있어요. 연습을 오랫동안 쉬었더니 굳은살이 다 떨어졌어요. 큰일났어요.

김혜나_<파라다이스 티켓>이라는 창작 뮤지컬을 연습하고 있어요. 11월11일부터 공연합니다. 홍보해야지, 홍보해주세요. (웃음) 대학로에 있는 예술마당에서 내년 1월1일까지 합니다.

박희본_<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본격 시즌1을 촬영하고 있어요. 이전에 인디 시트콤으로 했던 것은 맛보기랄까요? MBC에브리원에서 12월부터 해요.

김혜나_나도 거기 한편 나갈 건데.

박희본_꽃비씨도 예약해놨어요. 카메오 많이 나오는데 엊그제는 조성하 선배님, 변영주 감독님, 이해영 감독님, 손영성 감독님이 출연했어요.

<씨네21>_부산에서 이슈가 될 거라고 예상 하셨나요? 특히 외국 게스트가 좋아했다고 하던데요.

김혜나_이야기가 명확하잖아요. 외국 분들도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던데요. 트위터로 너무 잘 봤고 멋있는 작품이라는 쪽지를 받았어요.

김꽃비_저는 친구 중에 베니스, 베를린, 로테르담영화제의 위원장이라든지 프로그래머가 있는데… 친구라고 하기에 좀 그렇지만. 어쨌든 그분들을 만났는데 축하한다면서 왜 다른 영화제에는 안 냈냐고 그랬어요. 칸영화제도 노려볼 수 있다고 그러고요. 섣부른 얘기이긴 하지만요. 그런 얘기도 나왔다는 거죠.

<씨네21>_세분이 <돼지의 왕>에서 맡은 역할에 대해 소개를 부탁합니다.

김꽃비_저는 <돼지의 왕>에서 어린 종석 역을 맡았습니다. 성인 종석 파트가 있고 과거 파트가 있는데요. <돼지의 왕>은 과거의 일을 종석의 시선으로 회상하거든요. 그래서 대사는 별로 없어요. (웃음)

박희본_저는 어린 경민 목소리를 연기했어요. 경민이는 어리바리면서 여리고 또 순진하면서 뭘 모르는 애 같아요. 제가 순진하진 않지만 뭘 모르는 건 비슷한 것 같아요. (웃음) 성인이 됐을 때의 경민은 뭔가 가슴에 응어리를 풀려고 종석을 찾는데 좀 무서워지죠.

김혜나_여기 착한 애들 없어. 다 무서운 애들이야.

<씨네21>_제일 무서운 김철 역할을 맡으셨잖아요.

김혜나_카리스마있는 짱이죠.

김꽃비_왕이에요, 왕.

배역 귀띔 없이 시나리오 받았죠

<씨네21>_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박희본_진짜 재밌게 봤어요.

김혜나_저도요. ‘잠깐 들춰봐야지’ 하고 열었다가 끝까지 다 읽었어요. 시나리오가 순식간에 한 호흡으로 확 읽히니까 놀랍잖아요. 그런데 여자가 안 나오더라고요. (일동 웃음) 도대체 나한테 뭘 시키려는 거지 그랬죠.

김꽃비_배역을 정해놓고 시나리오를 주신 건데 우리한테는 말을 안 했죠.

김혜나_여자가 안 나와서 실망을 한 거예요.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그래서 뭘 하라는 거예요?” 그랬더니 거기 철이라고 있대요. 남자잖아요. 그러니까 남자 역할을 여자가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만나자고 해서 감독님을 만났는데 철이 스케치를 딱 보여주는 거예요. 잘생겼더라고요. 그래서 하기로 했어요. (웃음)

김꽃비_나는 뭐야. 종석이는 아직까지도 마음에 안 들어요. 진짜 중학생인데 얼굴에 주름이 있고 너무 심해요. 노안도 그런 노안이 없어.

김혜나_맞아. 나한테 종석이 시켰으면 안 한다고 그랬을 거야.

<씨네21>_더빙하면서 재밌었던 일은 없었나요?

김꽃비_생각나는 게 하나 있어요. 우리 녹음실 옆에 다른 녹음실도 있었어요. 거기서 음악 작업을 하는 것 같았는데 소리를 너무 크게 틀어놓은 거예요. 방음이 되긴 하지만 우리 녹음실 안까지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쪽에 “음악 좀 꺼주세요”라고 강하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죄송하지만, 소리 조금만 줄여주시면 안될까요” 이렇게 굽실거리고 비굴하게 그랬죠.

<씨네21>_특별히 재밌었던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김꽃비_힘들었던 일인가요? (웃음)

김혜나_오프닝 대사가 바뀐 게 생각나요. 제가 처음에 연상호 감독님에게 “이거 깁니다. 바꾸세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괜찮다고 하더니 결국 길었나봐요. 그래서 혼자 재녹음을 하러 갔었어요. 그때 극중에 등장하는 고양이며 남은 캐릭터를 녹음해야 하는데 감독님이 계속 연기 욕심을 부리시는 거예요. 자기가 더빙을 하겠다고요. 그때 찍어놓은 영상이 있을 텐데…. 제가 감독이 돼서 감독님 자리에 앉아서 연출을 했어요. 계속 마이크로 “감독님 그렇게 웃으면 안되죠. 웃음소리가 입이랑 안 맞잖아요, 네? 다시 한번요.”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노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감독님 자리가 그렇게 재밌는 자리인 줄 몰랐어요

<씨네21>_<돼지의 왕>에 연상호 감독 목소리가 많이 들어갔죠?

김혜나_네. 결국 고양이 목소리 들어갔어요.

김꽃비_연기하는 거 좋아해요. 본인이.

김혜나_그리고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하세요. (웃음)

<씨네21>_배우 더빙하기 전에 녹음된 가이드 대사는 본인이 다 하셨잖아요.

김혜나_철이 장면 중에 슬픈 장면이 있어요. 엄마가 뭐라고 그러면 철이가 고뇌에 빠져서 얘기해야 하는데 엄마 목소리가 감독님 목소리인 거예요. “아이고, 철아 너는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감독님 목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을 글썽글썽해야 하는데 정말 죽겠는 거예요. 정말 이를 악물고 초집중 상태로 녹음했어요.

<씨네21>_여자 캐릭터는 나름 여자 목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일동_그게 더 웃겨요.

<씨네21>_전문 애니메이션 성우가 아니니까 아무래도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김꽃비_항상 말하는 거지만 입모양을 맞추면서 감정을 실어야 하는 게 어렵죠. 게다가 우리는 남자 목소리를 내야 하잖아요.

박희본_경민이는 많이 맞거든요. (스스로 뺨을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맞는 거는 진짜 때려야지 그 소리가 나더라고요. 세게는 안 때렸지만요.

김혜나_(허공에 펀치를 날리면서) 저는 직접 때렸어요. 테이블 잡고 날아차기하고… 옥상 싸움신 있잖아요. 그 장면은 한번 어긋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릴 것 같은 거예요. 영상을 틀어놓고 연습을 하는데 잘될 것 같은 거예요. 느낌이 딱 오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이 뭐라고 하시는 도중에 조용히 하라고 하고는 한방에 진짜 싸움하듯이 녹음했어요. 그때도 초집중이었어요. 때리는 장면이 정말 많아서 녹음 마치고 집에 갔을 때 온몸에 근육통이 생겨서 파스 붙였어요.

<씨네21>_남자 목소리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김혜나_제가 낼 수 있는 최대한 낮은 목소리를 찾아서 그 목소리를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게 연습을 했어요. 평소에도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연습을 했더니 정말 낮아졌어요. 원래 높은 목소리거든요. 지금은 많이 돌아오고 있는데 연습을 하니까 조금 변하기는 하더라고요. 보실 때 어땠어요?

<씨네21>_철이는 의식 안 하고 들으면 진짜 남자 목소리 같아요. 그렇지만 더빙을 한 배우가 누군지 알기 때문에 자꾸 얼굴이 떠오르기도 해요.

김혜나_맞아요. 그래서 사실 저희는 인터뷰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했어요. 저희 얼굴이 안 나갔으면 했거든요.

김꽃비_자꾸 의식이 될 수밖에 없어요. 안 그래도 제 캐릭터는 생긴 게 워낙 그래서 이질감이 큰 것 같아요. 나도 경민이 하고 싶어~! (웃음) 경민은 곱상하게 생겨서 얇은 목소리를 내도 이질감이 없거든요.

박희본_경민이 셋 중에는 제일 부잣집 아들이죠. (웃음) 그런데 <돼지의 왕>의 그 동네가 압구정이었대요.

김혜나_아니, 그걸 누가 알겠냐고. 아무리 봐도 어디 허름한 동네지.

박희본_사실 지방 소도시인 줄 알았거든요.

김꽃비_감독님 본인이 겪은 학창 시절의 영향을 조금 받아서 쓴 건데요. 오히려 지방은 한 학교에서 계급차가 심하지 않고 비슷비슷한 수준인 반면 거기는 잘사는 애들과 못사는 애들이 섞여 있대요. 그래서 계급차가 더 컸던 거예요. 강남이 막 개발되기 전이라서요.

다음엔… 고양이를 해보고 싶어

<씨네21>_<돼지의 왕>에서 각자 생각하는 좋았던 장면은 어떤 게 있을까요?

김꽃비_전 엔딩요.

김혜나_엔딩은 어떤 장면도 이기지 못할 것 같아요.

박희본_특히 어른 경민의 목소리가 정말 소름 돋았어요. <돼지의 왕> 등장인물 가운데 오정세 선배님과 성인 경민이 제일 싱크가 잘 맞는 것 같아요.

김꽃비_성인 경민과 종석을 연기한 오정세, 양익준 두분은 정말 연기를 잘하셨지만 선녹음을 한 거였어요. 그 차이가 엄청나죠. 선녹음은 대본을 보면서 연기만 하면 돼요.

김혜나_우리는 그림에 소리를 맞춰야 하는데 대사가 감독님의 호흡이에요. 그 호흡을 따라가면서 캐릭터를 만들면서 남자 역할까지 해야 하니까 처음에는 버거웠거든요. 다 선녹음을 했으면 더 좋았겠죠.

<씨네21>_다음에 또 애니메이션 연기를 할 생각은 있나요?

김꽃비_저는 인간 말고 다른 거 해보고 싶어요. 애니메이션이니까 다른 걸 해볼 수 있잖아요. 동물이라든지 몬스터라든지.

김혜나_연극에서도 할 수 있어. 그런 거 하고 싶으면 연락해. 닭이나 개나 고양이 할 수 있게 소개해줄게.

김꽃비_정말요? 그럼 난 고양이.

김혜나_옷만 고양이고 얼굴은 네 얼굴로 나와야 한다. (웃음) 사실은 <돼지의 왕>이 잘되면 이후에 애니메이션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마당을 나온 암탉>은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만든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이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굉장히 적은, 말도 안되는 예산으로 이렇게 뚝딱뚝딱 만들었는데 이만큼의 퀄리티가 나온 거잖아요. 적은 예산으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씨네21>_역시 EBS <애니토피아> 사회자 출신답네요. (웃음) 실은 연상호 감독 뒷담화를 좀 했으면 했는데 시간이 얼마 없네요.

박희본_<돼지의 왕> 말고 감독님의 다른 스토리도 있는데 내용이 정말 좋아요. 차기작이라고 하신 <사이비>도 그렇고 지금 쓰고 있는 다른 작품도 그렇고 스토리만 보고도 몇 십억씩 투자를 받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김꽃비_저는 사실 <돼지의 왕> 시나리오를 훨씬 전에 봤었거든요. 거의 안 고쳤어요. 딱 써놓고 마음에 들어, 이런 스타일이에요. 양익준 감독도 약간 그렇거든요. 암튼 <사이비>랑 또 다른 시나리오를 봤는데 정말 각본 잘 쓰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실사영화로 만들어도 정말 잘 나올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애니메이션계에 큰 인물이 하나 나온 것 같아요. 뒷담화하자고 했는데. (웃음)

김혜나_갑자기 급훈훈하게 마무리?

박희본_<마당을 나온 암탉>이 물꼬를 터놨다면 <돼지의 왕>이 이 분위기를 끌고 가면 좋겠어요. 제가 참여해서가 아니라 관객으로 봤을 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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