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새로 등장한 명물인 영화의 전당은 조만간 세계 최대 캔틸레버(외팔보) 건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등재되었다는 인근 신세계백화점과 더불어 해운대 센텀시티 일대는 바야흐로 기네스 타운이 되려나 보다. 이 건물 완공을 계기로 부산영화제가 더욱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은 별로 개운치 않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 건물은 2005년 국제지명현상설계를 통해 건축가를 선정하였다. 그런데 당시 초대된 건축가들의 면면을 보면 국내 건축가들이 하나도 없다. 국내 건축가들이 당선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참여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영화의 전당은 용산국제업무지구, 청계천 재개발, 그리고 이화여대지하캠퍼스 등과 더불어 처음부터 국내 건축계를 완전히 배제하고 진행된 대표적 건축 프로젝트의 하나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건축계에서 ‘국제’는 ‘한국은 빼고’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런 일이 다른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문학이라면, 미술이라면, 그리고 영화라면?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시점, 진행되고 있는 제3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 소개되는 영화 16편 중 2편이 김현정+김애영, 이현정 등 한국 감독의 작품이다. 최소한 이 정도는 기본 상식 아닌가?
한국사회는 ‘스크린쿼터’라는 극강의 수를 둬가며 국내 영화계를 지켜내려 했던 경험이 있다. 그것이 영화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했고, 그 결과 상당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특히 ‘문화다양성’의 개념은 당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스크린쿼터 운동의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이런 모든 노력들이 모여서 한국 영화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물론 즐거운 일이다. 영화의 전당도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프로젝트를 외국 건축가들만의 잔치로 만들어버린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 건축계는 그 축제의 일부가 될 자격조차 없는 것일까? 아니면 문화다양성은 이제 무시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구현됐다는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게 비가 새는 그 지붕은 지금이라도 다시 궁리하면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왕 지은 건물이니만큼 잘 유지하고 널리 알려 정말 부산의 명물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작 문화다양성만큼은 갈 길이 멀다. 부산이라는 도시 전체를 폭넓게 아우르려 하지 않고 특정 지역, 특정 건물로 집중하려는 발상 자체가 정말 근사한 것일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