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도쿄에 놀러갔다. 하루는 시부야, 다음날은 신주쿠, 그 다음날은 긴자. 하루에 한번씩 그 지역 서점에 들렀다. 하지만 우에다 쇼지(植田正治)의 책을 파는 서점은 없었다. 심지어 아오야마의 사진 전문 서점 주인은 그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눈치였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에비스의 도쿄도사진박물관에 다시 들렀다. 숙소와 가까워 첫날 도착하자마자 찾았던 곳이었다. 우에다 쇼지라는 사진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그곳에서였다. 그의 전시회는 이미 끝난 상태였고, 대신 박물관 입구에 그가 1950년에 찍은 사구(砂丘) 풍경 사진이 대형 걸개에 걸려 있었다. 그 사진 한장 때문에 여행의 대부분을 서점 순례에 매달렸다. 마음으로라도 찍어두자. 낮술까지 마신 상태로 걸개 사진을 꽤 오랫동안 지켜봤던 것 같다. 우스운 건 그러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물관 내 서점에 들렀을 때, 그의 사진집이 마술처럼 진열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든 그 책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첫날의 욕심이 점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던 모양이다.
우에다 쇼지(1913∼2000). 그를 사건의 역사를 바꾼 거장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사진을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쉽게 시선을 거두진 못할 것이다. 평생의 대부분을 고향인 돗토리에 머물면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모델로 찍은 그의 사진들은 죽음의 침묵이 짙게 깔려 있다. 피붙이를 찍은 사진들이니 소소한 삶의 즐거움에 대해 말해야 할 텐데 그의 프레임 안에서 삶의 약동과 탄성(彈性)을 느끼기란 불가능하다. 한 소년이 가면을 쓰고 사구 위에서 점프하는 사진을 보면, 초현실주의와 유대 관계를 맺었던 필립 할스먼의 사진을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립 할스먼이 스튜디오에서 유머를 짜낸 것과 달리 우에다 쇼지가 사구 위에서 발견한 키워드는 체념과 상실이다. 하늘과 사구, 그 사이에 놓인 우에다 쇼지의 인물들은 우산을 들고, 꽃을 들고 무의미한 놀이를 반복하는데 한낮에 찍은 그의 흑백 사진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기보다 불안을 상기시킨다. 시간은 그들의 영혼을 좀먹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조차 모른 채 사라질 것이다. 사진집을 들출 때마다 생이란 유령들의 가면놀이에 불과하다는 우에다 쇼지의 중얼거림이 모래바람 속에서 들린다. 2008년 대구사진비엔날레를 구경하러 갔던 것도 순전히 우에다 쇼지 특별전 때문이었는데 전시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대형 사진전 붐이 일고 있으니 한국에서 그의 전작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드라마 때문에 관광상품이 쏟아져 나온 터라 그의 박물관이 있는 돗토리에 가는 것도 어렵지 않은 여정이 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