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대신 얻어맞기 좀 서글프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저는 로봇이라서 통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얻어맞은 부위는 다시 땜질하면 되니까요.
-에이, 그래도 힌두교에 따르면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있다던데, 만날 링 위에 올라서 권투질하다보면 어느 순간 쇳덩어리도 자아가 형성되고 그럴 수 있잖아요. =저는 자아가 없다니까요. 제 캐릭터에서 자아를 느낀다면 그건 괜스레 쇳덩어리에 감정이입하고 훌쩍이는 인간 관객의 자아 때문이겠죠. 기자님도 저에게 자아가 있다고 느끼세요?
-당연히 그러니까 이 짓거리(=가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전 건프라에게도 감정을 이입하는 인간이거든요. =건프라는 심지어 프라모델이잖아요. 저한테 자아를 느끼는 거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웬 건프라?
-제가 좀 심약한 성격이라 그런가봅니다. 얼마 전엔 키우는 고양이가 서재로 뛰어오르다가 아끼는 턴에이 건담을 떨어뜨렸어요. 안테나가 부러졌는데 남은 조각이 사라져서 원상복구도 못해요. 턴에이 건담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고 싶었던지. 잘 보니 걔도 울고 있더라고요. =심약한 성격이 아니라 외로운 성격이겠죠. 방구석에서 건프라나 만드는 오덕들이 다 그렇듯이. 풋.
-방구석 건프라 오덕 욕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들이 결국 당신처럼 훌륭한 로봇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무슨 소리 하십니까. 저처럼 훌륭한 로봇들을 만들어낼 사람들은 지금 학원에서 열심히 수학과 물리 공부 중이에요. 건프라 만들 시간이 어딨어요. 로봇은 플라스틱 조립 실력이 아니라 공학으로 만드는 거예요. 수학과 물리와 영어가 포함된.
-뭐… 뭡니까. 로봇 주제에 이런 강남 학부모 같은 대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