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은 일요일 밤의 <개그콘서트>, 가끔 지인들과 가볍게 즐기는 와인이나 맥주, 그리고 딸 은수와 레오(3년째 키우고 있는 세살 된 수컷 몰티즈)랑 함께하는 저녁 산책이다. 야금야금 늘어가는 나의 체중을 걱정한 딸아이의 제안으로 시작된 산책은 종종 은수의 친구들과 엄마들까지 합세해 판이 커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엄마들은 커피,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른 채 하하호호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서프라이즈 산책이 된다. 이런 저녁 산책은 어느덧 일종의 ‘치유의 시간’이 되어 내게 더없이 소중한 의미로 자리잡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며 사소하게 상처받은 마음이 그때그때 치료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쌓이면 마음과 더불어 몸도 아프게 된다. 이른바 스트레스성 통증들 말이다. 목덜미는 뻐근해지고 머리는 지끈거리고 어깨는 천근이고…. 이런 신체적 고통은 다시 신경을 건드려 매사에 짜증을 내게 만드는데,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언젠가부터 풀어야 하는 크나큰 과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작해야 일주일에 두어번 하는 이 저녁 산책이 나에게는 심신을 건강하게 해주고 딸아이와의 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되는, 그야말로 약이 되는 시간이 될 줄 처음에는 몰랐다. 일단 가벼운 도보운동은 몸에 부담이 없어 좋다. 일정한 보폭으로 걷다보면 그 반복되는 리듬에 몸과 마음이 적응해 머리가 단순해지고, 나누는 대화도 새털같이 가벼운 얘기들이 대부분이라 이 또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마음이 편해지니 자연스레 몸의 컨디션도 한결 나아져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가 얼마간 산뜻해지는 느낌이다.
“엄만 이것도 몰라?”라는 말로 종종 나를 무시했던 딸아이도 이런저런 학교 얘기를 하며 이젠 다정하게 내 팔짱을 낀다. 싸워서 냉전 중이었던 친구랑 다시 화해한 듯한 기분이랄까,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딸이라는데 이 우정(?)을 잘 이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슬쩍슬쩍 딸아이의 눈치를 살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래 의도했던 체중감량은 글쎄, 전~혀 효과가 없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정에 따라 들쭉날쭉 걷게 되고 그 와중에 커피도 마시고 떡볶이도 사먹고 하다보니 감량은커녕 오히려 체중 증가에 한몫을 하고 있지 않나 의심스럽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이 소소한 운동이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름의 성과가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은수야, 산책 끝나고 레오 목욕은 우리, 인간적으로 함께하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