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심한 문자중독이었다. 집에 있는 책, 신문, 전단지는 물론 상품설명서까지 쉬지 않고 읽어대는 걸 보다 못한 부모님이 나가 놀라며 등을 떠밀어도 그네에 앉아 옆집에서 빌린 책을 몰래 읽었을 정도로. 그 흔한 위인전 전집이 집에 없었음에도 신사임당이니 광개토대왕이니 하는 ‘유명 위인’들부터 임진왜란 때 전사한 송상현처럼 어지간한 인물들의 일대기는 거의 읽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옆집의 가지런한 책꽂이 덕분이었다. 하지만 <오성과 한음>처럼 위인전 중에서도 시트콤류의 에피소드를 좋아했던 초등학생에게 세종대왕 혹은 충녕대군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이를테면 위인계의 ‘엄마 친구 아들’ 같은 존재였다. 술과 여자와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세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큰형이나 아예 불가에 귀의해 떠난 작은형과 달리 어린 시절부터 백성을 생각하는 착한 마음씨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다 건강을 해칠 뻔한 성실함의 소유자라니. 물론 한글을 창제해서 그 어려운 천자문 외우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굳이 친구 삼고 싶거나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었단 얘기다.
그런데 최근 방송을 시작한 SBS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도(송중기)는 다르다. 이정명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MBC <선덕여왕>의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쓰고 SBS <바람의 화원>의 장태유 감독이 연출하는 이 드라마의 시작은 충녕대군의 맑고 훈훈한 어린 시절이 아니다. 이야기는 이미 왕위에 올랐지만 상왕 태종(백윤식)의 그늘 아래 무력하게 시들어가는 젊은 왕의 고뇌로부터 출발한다. 무(武)로 조선을 건국하고 강력한 왕권을 세우기 위해 형제를, 동료를, 인척을 무수히 베어낸 아비에게서 도피하기 위해 궁 한쪽에 들어앉아 마방진에 몰입하며 살아가던 이도는 아이 하나를 구하고자 칼날 앞에 목을 내민다. 죽을 때조차 양반은 사약을 받고 노비는 맞아 죽어야 했던 시대에 “내가 살린 나의 첫 백성이다. 하여 난 잠시 임금이었다”라는 이도의 대사는 한 사람을 살린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위해 지도자는 자신의 무엇을 걸고 고민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한 어린 유생의 비판조차도 죽음으로 되갚는 자가 이 나라의 주상이다”라는 대사가, “고작 26년 된 나라인 조선의 임금”이란 자리는 이도가 원하는 문(文)의 방식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한가로운 자리가 아니라는 태종의 일갈이 2011년 대한민국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선덕여왕>을 현대적인 감각의 정치 사극으로 그려냈고 “작가란 세상을 향해 할 말이 있는 사람”(박상연)이라 여기며 “미디어와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일하면서 상시적으로 지금의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김영현)던 작가들다운 전개다. 아역배우들의 미숙한 연기, 정도전이 남긴 밀본지서를 둘러싸고 다소 덜컹대기 시작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자잘한 단점들을 덮는 것은 배우 송중기다. 지난해 KBS <성균관 스캔들>에서 비단 한복보다 더 고운 자태를 지닌 도령 구용하를 연기해 장안의 누나들을 설레게 했던 그는 심약해 보이지만 담대하기도, 강인하기도 한 이도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십수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전개될 5회부터는 역시 반가운 얼굴 한석규가 세종으로 등장할 예정이지만 “지랄”이란 말을 내뱉을 때조차 꽃보다 아름다운 임금님이라니 곤룡포 자락이라도 붙들어 좀더 주저앉히고 싶은 것이 이 미천한 주제에 눈만 높은 백성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