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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아, 속 시원하네!

KBS 2TV <개그콘서트> ‘애정남’이 히트하는 이유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 집에서 TV를 본다는 것은 일종의 죄악과도 같았다. 할아버지가 보시는 뉴스나 아버지가 보시는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을 제외한, 즉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공부에 방해되는 유치하고 쓸모없는 것들’로 치부되었고 MBC <마지막 승부>를 보기 위해 엄마에게 대든 것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반항이었다. 하지만 방송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고, 부모님도 더 이상 내게 공부하라는 닦달을 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우리 집의 TV시청 실태는 꽤 흥미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어지간한 평론가보다 까다로운 아버지가 드물게 군말없이 보시는 드라마는 시청률 30%를 넘기고, 연예인에 관심없는 언니가 ‘쟤는 좀 괜찮다’고 하면 곧 유망주로 떠오른다.

‘일반 시청자’의 눈이 생각보다 정확하고, 그것이 결국 흥행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KBS <개그콘서트>의 ‘애정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최효종이 안경 너머로 눈을 희번덕거리며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할머니와 임신부가 지하철 내 앞에 동시에 섰을 때, 요거 애매합니다잉~. 그런데 무조건 할머니가 이깁니다잉. 단! 임신부가 임신 5개월 이상이면 임신부가 이깁니다잉~”이라 외치던 순간, 갠 빨래를 두고 방을 나가시려던 엄마가 웃음을 터뜨리셨다. MBC <웃고 또 웃고> ‘나도 가수다’의 정재범(정성호)을 임재범과 착각해 “저 사람은 <나는 가수다> 그만 나온다더니 또 나왔니?”라고 하실 만큼 코미디 이해도가 낮으신 엄마를 한방에 웃기다니! 그리고 엄마는 갑자기 책상을 정리하는 척하시며 “사귀고 나서 다음 연애를 하기까지의 기간은 1년을 기준으로 한달, 2년이면 두달. 단, 100일 미만은 연인으로 간주 안 합니다잉. 그냥 친한 이성친구입니다잉~. 하지만 그 100일 사이에 1박2일 여행을 다녀오면 한번에 한달입니다잉!”이라는 ‘애정남’의 처방을 모두 듣고서야 방을 나가셨다. 그리고 예상대로 ‘애정남’은 히트했다.

즉, 이 코너의 매력은 보편적이면서도 미묘한 구석이 있어 누구나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해 명쾌한, 심지어 은근히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영화관 팔걸이의 오른쪽과 왼쪽 중 어느 쪽이 내 것인가! 시사회에 갈 때마다 팔 둘 곳 몰라 소심하게 양쪽 다 쓰지 못했던 나는 요즘 “오른쪽이 내 거, 왼손잡이들은 통로쪽에 앉으세요. 양쪽이 다 내 겁니다잉~”이라는 애정남의 말씀을 잠언처럼 새기며 오른쪽에 당당히 팔을 올린다. “시식 코너에서는 세개까지, 네개부터는 식사니까 사셔야 합니다잉~”이라는 냉철한 판단도 어지간한 판사님들보다 훌륭하고 ‘상식적’이지만 최고는 역시 결혼식 축의금에 대한 정리다. “성수기는 3만원, 비수기는 5만원. 성수기는 4, 5, 9, 10월이에요잉~. 그리고 결혼하는 친구 부모님이 내 이름을 아시면 10만원입니다잉!” 이토록 합리적이고도 적절한 조언이라니, 가히 가정의례에 대한 법률 제16조로 포함해도 좋을 정도다.

요즘 <개그콘서트> 홈페이지에서는 ‘애정남에게 물어보세요!’ 게시판을 운영 중이다. 슬쩍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대한민국 21세기 최대의 고민’들이 가득하다. “남자를 ‘도둑놈’으로 만드는 커플의 나이 차이는?”, “부모님이 ‘시험 잘 봤다’고 인정해주는 점수는 몇점?”, “한입만 먹을게, 할 때 ‘한입’의 기준은?” 그리고 나 역시 궁금한 게 있다. “언니, 같이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손도 잡았는데 이건 사귀는 건가요. 그냥 만나는 건가요?”라며 고민하는 후배에게 명쾌한 대답을 해주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애정남,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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